[정규재 칼럼] 노동부를 고용부로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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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갈등의 '87년 체제' 끝내고…귀족노조 아닌 서민 일자리 걱정을
국가 정책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일은 언론인의 직분이 아니다. 국정 아이디어는 자리가 필요한 관변 대학교수나 청와대 주변을 맴도는 허다한 국정 기획가들이 백지 위에 제멋대로 그려대면 그만이다. 그러나 새해가 열리는 이 아침에 노동부를 고용부로 바꾸자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춘기자 회견에서도 강조했듯이 일자리는 국가경제의 기본이고 서민복지의 가장 강력한 보호장치다. 현대 국가를 복지국가로 정의하더라도 그 복지가 국민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일자리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두 발로 서서 가족의 생계를 독립적으로 꾸려 나가는 일은 가정은 물론이고 국가의 건강성을 재는 바로미터다.
물론 일자리는 나라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는 누가 뭐래도 기업이 만들고 시장이 만든다. 시장이 활기차게 돌아갈 때 국민 누구든 자신의 계산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조그만 사업체라도 차리게 되는 것이고 기업이 융성할 때 그 누가 강제하지 않더라도 업주는 직원을 늘리고 기꺼이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런 일자리라야 국민 각자가 호랑이처럼 독립적이며 주체적이 된다. 사실 나라가 나서서 일자리를 만들 수도 없다. 정부가 예산을 들여 만들어 내는 일자리라고 해봤자 행정인턴이거나 취로사업이거나 중소기업에 소액의 일시적인 고용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전부다. 이런 일자리는 미봉은 될지언정 결코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정부가 개입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경우에 따라 경제에 해독만 끼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민을 부패시키고 의존적으로 만들며 노동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적정 노동가격 형성을 방해한다. 그래서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 내라고 고용부로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 노동시장은 1987년 체제 이후 민주화라는 명분 아래 지속적으로 부패해 왔다는 점을 우선 지적해두어야 하겠다. 노동시장의 상부구조, 다시 말해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왔다. 이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가면을 쓴 채 기득권 체제를 만들어내면서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구조로 만들어 왔던 것이다.
임금은 갈수록 한계생산비에서 유리되고 급기야는 노동시장 내부에 식민지적 임금구조를 형성하면서 실업자를 양산하고 비정규직을 착취하게 된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이런 구조가 바로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이중구조의 본질이다. 노동시장의 상층부가 기득권을 확보한 만큼 실업은 늘어나고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어려워지며 임금은 생산성 아닌 투쟁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이 87년 체제가 만들어낸 부정적 측면이다.
노동부 역시 정치 노조들과 공생해왔다는 점을 지적해두어야 마땅하다. 대규모 파업으로 나라가 흔들릴수록 노동부는 일종의 권력 부서와 유사한 행동패턴을 보여왔다. 노동부의 주된 업무는 민노총을 다독이고 노동시장의 귀족들과 협상하는 것, 다시 말해 정치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이 체질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제는 그 소임을 다하고 국가의 짐만 되고 있을 뿐인 낡은 87년 체제를 혁파하기 위해서 노동부라는 이름을 고용부로 바꾸고 노동조합이 아니라 국민의 일자리를 다루는 정부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사실 노동부라는 이름은 지극히 20세기적인 것이어서 낡은 이념투쟁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그런 명칭이 되고 말았다. 물론 명칭이 실질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줌으로써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장점도 있다. 노동부가 민노총이나 전교조 따위를 상대하는 국가조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조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불러야 하는 행정부서의 명칭을 고용부로 바꾸자는 것이다.
정규재 논설위원·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
물론 일자리는 나라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는 누가 뭐래도 기업이 만들고 시장이 만든다. 시장이 활기차게 돌아갈 때 국민 누구든 자신의 계산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조그만 사업체라도 차리게 되는 것이고 기업이 융성할 때 그 누가 강제하지 않더라도 업주는 직원을 늘리고 기꺼이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런 일자리라야 국민 각자가 호랑이처럼 독립적이며 주체적이 된다. 사실 나라가 나서서 일자리를 만들 수도 없다. 정부가 예산을 들여 만들어 내는 일자리라고 해봤자 행정인턴이거나 취로사업이거나 중소기업에 소액의 일시적인 고용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전부다. 이런 일자리는 미봉은 될지언정 결코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정부가 개입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경우에 따라 경제에 해독만 끼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민을 부패시키고 의존적으로 만들며 노동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적정 노동가격 형성을 방해한다. 그래서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 내라고 고용부로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 노동시장은 1987년 체제 이후 민주화라는 명분 아래 지속적으로 부패해 왔다는 점을 우선 지적해두어야 하겠다. 노동시장의 상부구조, 다시 말해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왔다. 이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가면을 쓴 채 기득권 체제를 만들어내면서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구조로 만들어 왔던 것이다.
임금은 갈수록 한계생산비에서 유리되고 급기야는 노동시장 내부에 식민지적 임금구조를 형성하면서 실업자를 양산하고 비정규직을 착취하게 된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이런 구조가 바로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이중구조의 본질이다. 노동시장의 상층부가 기득권을 확보한 만큼 실업은 늘어나고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어려워지며 임금은 생산성 아닌 투쟁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이 87년 체제가 만들어낸 부정적 측면이다.
노동부 역시 정치 노조들과 공생해왔다는 점을 지적해두어야 마땅하다. 대규모 파업으로 나라가 흔들릴수록 노동부는 일종의 권력 부서와 유사한 행동패턴을 보여왔다. 노동부의 주된 업무는 민노총을 다독이고 노동시장의 귀족들과 협상하는 것, 다시 말해 정치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이 체질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제는 그 소임을 다하고 국가의 짐만 되고 있을 뿐인 낡은 87년 체제를 혁파하기 위해서 노동부라는 이름을 고용부로 바꾸고 노동조합이 아니라 국민의 일자리를 다루는 정부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사실 노동부라는 이름은 지극히 20세기적인 것이어서 낡은 이념투쟁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그런 명칭이 되고 말았다. 물론 명칭이 실질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줌으로써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장점도 있다. 노동부가 민노총이나 전교조 따위를 상대하는 국가조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조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불러야 하는 행정부서의 명칭을 고용부로 바꾸자는 것이다.
정규재 논설위원·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