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금융사 근무 경력과 국제금융 분야의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금융사들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통화당국에 정책 자문을 해주고 있는 존 마티스 미국 선더버드경영대학원 교수(58).그는 금융위기로 드러난 모든 문제를 규제로만 풀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규제는 어떤 식으로든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고,결과적으로 혁신이 위축돼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장경제에서 기업가 정신이 꽃피려면 저비용구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대형 금융사를 상업 · 투자은행으로 각각 분할하는 방안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다양한 형태의 금융사들이 서로 경쟁하게 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감독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경제의 순환계 역할을 하는 금융기능이 회복돼야 미국 경제가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통화당국에 정책 자문을 해주고 있는 전문가로서 두바이 사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두바이는 애초부터 비즈니스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 금융중심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광지라고 할 수도 없다. 2년 전 두바이 국제금융공사와 일을 같이 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처럼 채무이행 유예를 선언하면 중동 국제금융센터로서의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주택시장 버블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으로 돈이 너무 많이 풀린 탓에 빚어진 결과다. "

▶2000년대 이후 통화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2000년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질 때부터 미국 유로존 영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엄청난 유동성을 공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급격히 증가하는 증권화 시장에 대한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급속한 증권화는 시중 유동성 증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택시장 거품이 생긴 근본 요인이다. 게다가 이라크와의 전쟁 역시 유동성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쟁 자원을 원활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돈을 푼 셈이다. 잘못된 통화정책은 엄청난 후유증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

▶FRB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법안이 미 하원을 통과했는데.

"통화당국은 독립을 유지하고 정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대단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이다. 통화당국에서 하는 일을 의회에 있는 누가 제대로 알 수 있단 말인가.

의원들은 국가 전체보다는 표심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결정하려고 할 것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FRB의 독립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감독 시스템을 어떻게 개편하는 게 바람직한가.

"단순히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규제 강화는 비용 증가로 이어져 결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복잡한 감독기구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현명한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 소비자 보호기구를 새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볼 수 없다.

정부의 역할만 커질 뿐이다. FRB는 이미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국제결제은행(BIS)이 부과하는 규율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기존에 국가 간 지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게 주된 업무였다면 이제는 국제 금융 안정과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하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두 기구에서 글로벌 유동성과 미국 금융사의 잘못된 행태를 충분히 지적하고 감시할 수 있다. 미국은 국제금융시장의 지배자가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수(플레이어)로 바뀌어야 한다. "

▶FRB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법을 바꿔 FRB에 더 많은 권한을 주라는 뜻이 아니다. 이미 보유하고 있지만 쓰지 않았던 수단을 적절히 쓰면 된다. 국채 및 모기지 증권 매입 등의 조치도 이번에 이례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런 조치가 없었으면 미국 금융사들은 더 큰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FRB는 금융 환경 변화에 따라 감독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예금을 받는 은행뿐 아니라 소비자금융을 취급하며 결과적으로 신용을 공급하는 민간 기업에 대한 감독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금융시스템만 감독해서는 위험을 막을 수 없다. "

▶FRB의 출구전략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 내내 상당히 낮은 수준의 금리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 회복 강도가 미약한 탓이다. 최근 성장률은 대부분 정부의 지출에 의존한 것이다. 민간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는 게 중요하다. 고용시장도 밝지 않은 편이다.

실업수당 재원이 바닥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미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국 가계의 저축률은 5~6%로 높아졌다. 주택시장 회복 여부도 장담할 수 없다. 상당수 미국인들은 한동안 고용시장이 뚜렷하게 개선되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

▶미국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입지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의 빚 문제는 심각하다. 중국 일본 등이 현재 금리 수준으로 미 국채를 계속 사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단기적으로 보면 다른 대안이 없긴 하다. 하지만 적정 시점이 오면 미 국채 매입을 꺼리게 될 것이다. 유일한 유인책은 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3분기께부터 금리 인상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 같은 맥락에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를 대체할 통화는 없다. 전 세계 거래의 80%가 미 달러로 이뤄지고 있다. BIS 통계에 따르면 최근 유로화의 결제 기능은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

▶미국 경제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로 무엇을 꼽을 수 있나.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지 않기 때문에 생산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과 아시아 국가,중동 국가들의 경제가 살아나고 있지만 이들 지역에 대한 미국의 수출 비중은 9%에 불과하다. 외부 효과로 미국 경제가 회복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재 미국 생산설비의 68%만이 가동되고 있다. 팔리지 않는 주택들도 널려 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도 증가 추세다. 수요도 부족하고 투자도 부족하다. 정부의 재정 확대가 일자리 확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

▶미국 경제 회복이 미약하다면 상당 기간 저금리 정책이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양적 통화완화 정책과 재정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언젠가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벤 버냉키 FRB 의장의 자문위원회에서 낸 보고서에 따르면 통화 공급 확대를 완화하는 정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통화정책은 금융사를 구제하는 데 집중된 것 같다. 은행들은 부실 자산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고객들에 더 많은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 미국 금융사들은 이렇게 번 돈을 대출보다는 또 다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유보하고 있다. 은행이 적극 대출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기 회복과 감독 방향이 불투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하면.

"의료보험 개혁을 예로 들어보자.의료보험 개혁으로 서민들의 보험 혜택이 늘고 의료 기록을 디지털화해 의료비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화는 자칫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건강 관련 분야에서 일자리가 많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불확실하다. 정부가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을 갖추기란 어렵다. 고용시장이 급속히 개선될 것으로 낙관하기도 무리다. "

▶한국 경제 전망과 과제는.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은 뒤 한층 경쟁력 있는 국가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과감하게 개방경제를 추구한 것이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고 본다. 미국 등 서방경제 의존도를 낮추고 아시아 국가와 교역을 강화한 것도 주효했다. 중국 경제성장이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신흥시장 경제 사이클은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 한국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요즘은 일은 덜하지만 효율성을 많이 추구하려는 것 같다.

한국 대기업이 기술개발 분야에서 앞서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가장 큰 자원은 인적자원이다. 미국은 40%의 노동력이 밖에서 유입된다. 이들이 퇴직하는 사람들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이 풀어야 하는 또 다른 과제다. "

피닉스(애리조나)=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존 마티스 교수는…
월가 인맥 탄탄…금융 실무에도 밝아

국제금융 및 금융시장 전문가로 미국 명문 경영대학원인 선더버드의 국제금융서비스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 활동하기 전에는 JP모건체이스 등 월가 금융사의 국제 이코노미스트와 세계은행 선임 금융 애널리스트로 활동했다.

해박한 이론과 금융 실무에 두루 능해 각종 국제 행사에 연사로 초청받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는 사우디아라비아 통화당국의 금융 정책 자문을 맡고 있다. 미국 금융사들에도 유동성과 투자전략,펀드 운용전략,금융상품과 관련한 다양한 자문을 해주는 등 월가 인맥이 단단하다는 평가도 듣고 있다.

1941년 일리노이주 락포드에서 출생했다. 1966년 아이오와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월가 금융사와 국제기구를 거쳐 1988년부터 선더버드에서 재직해왔다. 주요 저서로는 △기업 금융 매니지먼트(2003) △세계 부채 딜레마(1983) △미 상업은행의 역외 대출(1981) △라틴아메리카와 경제 통합(196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