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 · 기아자동차 LG SK 등 주요 대기업의 올해 화두(話頭)는 1년 전과 확연히 다르다. 글로벌 경기가 침체에서 벗어나 확장세로 접어들어서다. 공격적인 투자와 해외시장 확대로 시장 점유율을 대폭 높인다는 목표다. 특히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성장세가 빠른 중국 인도 등 신흥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올해는 경쟁자 압도하는 해"

기업들은 그동안의 수세적 경영에서 벗어나 공격경영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반도체 LCD LED-TV 등에서 글로벌 최강자의 입지를 굳힌 삼성은 기존 시장에서 경쟁자를 압도하고 신사업을 조기 가시화한다는 전략이다. 대부분 계열사들이 작년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두며 확보해 놓은 15조원가량의 '실탄'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이다. 삼성은 올 2월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전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방침 아래 경영전략과 시스템을 다듬고 있다.

현대 · 기아자동차 역시 판매 확대와 공격적 경영을 벼르고 있다. 올해 글로벌 판매 목표를 작년보다 대폭 확대한 데 이어 쏘나타급 가솔린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를 연속적으로 출시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글로벌 빅5'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다는 전략이다.

LG그룹은 신사업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2차 전지 등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밑그림을 완성했다. SK그룹은 글로벌 선도 기술을 확보해 제3의 도약에 나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준비했다. '제2의 내수시장'으로 일찌감치 선포한 중국 시장 공략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한화는 올해를 '대도약과 전진'으로 삼았다. 지난 수년간 뿌려 온 국내외 성장동력의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성장엔진을 본격 가동하는 원년으로서 해외시장 개척도 가속화하기로 했다. 특히 대한생명의 상장을 통해 대도약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통합한 호텔과 리조트 사업의 외형을 확대하고 시너지도 높여가기로 했다. 한화석유화학은 중국 PVC공장에서 연말 상업생산을 시작하고,중동지역에서는 국내 업체 최초로 합작 플랜트 건설 착공을 앞두고 있다.

◆신흥시장이 최대 승부처

대기업들은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중국 쑤저우에 대규모 LCD 패널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전 세계 27개 생산법인 중 40%에 가까운 11개를 중국에 두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국 시장을 다질 수 있는 승부수를 마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스마트폰(인터넷 검색 등이 가능한 차세대 휴대폰) 출시 비율을 작년의 두 배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구글의 모바일 운영시스템(OS)인 안드로이드를 장착한 스마트폰 비중을 확대하기로 했다. 태양광으로 충전할 수 있는 휴대폰 '블루어스'도 내놓는다.

현대 · 기아차는 올 3월 베이징에 현대차 제3공장을 짓는다. 현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다. 이 공장이 완성되면 기아차까지 합쳐 연간 133만대를 현지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연말까지 남부지역 등을 중심으로 중국 내 매장 수를 600개로 늘리기로 했다. 4월께 브라질 공장을 착공,갈수록 커지는 남미 시장 공략도 강화하기로 했다. 현지에서 생산한 차종은 북미 등지에도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제철은 오는 4월 당진제철소를 준공한다. 연 800만t 규모로,철강시장에서 포스코와 양강 경쟁 구도를 형성한다는 계획이다.

◆'합쳐야 산다'…시너지 극대화

LG그룹은 6일 텔레콤 데이콤 파워콤 등 통신계열 3사의 통합법인 출범으로 유 · 무선 통합 경쟁에 가세한다. 모바일인터넷(오즈),인터넷전화(myLG070) 등의 성공 신화를 합병 이후에도 이어가기 위해 4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국내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는 방안을 승부수로 검토하고 있다. 매출 규모가 각각 19조원과 13조원대인 KT와 SK의 양강 구도에서 규모의 경제를 구축,본격적인 추격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SK그룹은 올 상반기 중 중국 투자와 사업전략 등을 총괄할 통합법인을 설립한다. SK에너지와 SK텔레콤 등 계열사별로 진행해 온 현지 사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략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통합법인이 출범하면 그룹 차원의 사업 전략 수립이나 투자 결정이 용이해져 계열사 간 시너지가 극대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음 달 서울 서초동 사옥에 입주하는 KT는 홈FMC(유 · 무선 통합) 서비스 및 모바일 인터넷을 집중 육성,LG · SK와의 경쟁에 대비하기로 했다. 이석채 KT 회장은 "앞으로 통신시장은 그룹 간 경쟁의 무대로 이행할 것"이라며 "KT 혼자로는 안 되며 협력업체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초고속인터넷과 와이브로 등 정보기술(IT) 인프라의 해외 수출에도 나선다는 전략이다.

◆신규사업 발굴로 미래 대비

기업들은 녹색산업 등 신규 유망 사업을 적극 발굴해 미래에 대비하기로 했다. LG전자는 신성장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태양광 발전용 패널을 올해부터 양산한다. 포스코는 세계 철강시장이 회복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작년과 같은 비상경영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내외 신사업 발굴을 강화하기로 했다. 올 상반기 연산 1200만t 규모의 인도 오리사 일관제철소 공장을 착공하는 게 그 첫 단추다.

GS그룹은 작년 인수한 GS글로벌(옛 쌍용)을 통해 신사업 발굴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현지 합작사인 GS칼텍스(랑방) 소료유한공사를 통해 복합PP(폴리프로필렌) 등 사업 범위를 넓힌다는 방침이다.

CJ그룹 계열사인 오쇼핑은 인도 홈쇼핑(스타CJ) 본방송을 시작한다. 현재 하루 6시간씩 시험방송 중이다. CJ제일제당은 3월부터 중국 하얼빈 공장에서 연 1200t 규모로 쌀 단백질을 생산한다.

효성은 미주 인도 중동 북아프리카 등 글로벌 시장에서의 판매 확대에 사활을 걸기로 했다. 작년 타이어코드와 스판덱스 부문에서 안정적으로 점유율을 늘렸다는 판단 아래 올해 세계 1위에 도전한다는 목표다.

LS전선은 5월부터 진도~제주 간 해저 케이블 매설작업을 시작한다.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작업이다. LS산전은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일본 말레이시아 등으로 진출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동부그룹의 주력인 동부제철은 올해 본격적으로 열연강판 사업에 나선다.

◆몸만들어 재도약

동부그룹은 김준기 회장의 사재출연 등으로 동부하이텍의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마무리했다. 동부메탈을 상장하고 농업부문(한농화학 등) 및 유휴 부동산을 매각해 반도체 부문의 독자생존 기반을 닦겠다는 구상이다. 동부화재 동부생명 등 금융 계열사들은 작년 금융위기 속에서도 안정적인 실적을 냈다고 자평,올해도 대내외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GM대우자동차는 올 7월께 준대형세단 VS300을 출시하는 한편 국내외 판매네트워크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기로 했다. 총 7조7000억원(작년 말 기준) 선인 총부채 규모를 줄이기 위해선 신차 판매가 우선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GM대우는 중 · 장기적인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주거래 은행인 산업은행과도 자금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

대우건설 매각 실패로 위기를 맞고 있는 금호아시아나는 재무구조 개선을 올해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최단기간 내 경영 정상화를 이룬다는 목표다.

◆원 · 달러 환율 관리가 관건

기업들이 올해 '비장의 카드'를 무기로 공격경영을 다짐하고 있지만 최대 위험요인은 환율이 될 전망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수출 위주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체력이 강해졌다고 하지만 원 · 달러 환율이 1000원 밑으로 내려가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 대부분 일본과 경쟁하고 있어 환율 하락(원화 강세)에 대한 기업들의 걱정은 더 절박하다. 주우진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는 "엔고(高) 현상은 마무리 단계에 있는 반면 원화가치는 높아질 것으로 보여 가격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2005년 원 · 달러 환율이 900원대 초 · 중반까지 떨어졌을 때도 잘 견뎌냈다는 반론이 있지만,세계 경제가 고도 성장을 구가했던 당시와 올해를 비교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환율 하락이 달러 약세와 유가 및 금리 상승을 동반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충격을 증폭시킨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은 올해 평균 환율이 1100~1200원 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의 반격과 중국의 추격이 한층 거세질 것이란 점도 주요 리스크 요인이다.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융위기 속에서 중국 기업들은 견고한 내수시장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강자로 부상했고 일본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을 분명한 경쟁자로 인식하고 견제 공세를 펴고 있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