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G20 트로이카' 좌담] "지구촌 문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도움되는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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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고광철 부국장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정상회의는 한국의 국격(國格)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연말 사공일 G20정상회의 준비위원장(무역협회 회장)과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에드문도 후지타 주한 브라질 대사가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별관 G20준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만났다.
브라질은 2008년,영국은 2009년,한국은 2010년 G20 의장국이다. 'G20 트로이카(삼두마차)'인 3개국 관계자들이 모인 것이다. 좌담은 고광철 한국경제신문 부국장 겸 경제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지난해 9월 미국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는 G20을 '세계 경제협력을 위한 최상위 포럼(premier forum for international economic cooperation)'으로 지정했다. 해외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의 권력 이동(power shift)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G20의 새로운 등장은 세계 경제 질서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가.
◆사공 위원장=G20의 부상은 지난 수십년간 일어난 세계 경제의 세력균형 변화를 인정한 결과다. 그동안 지구촌에는 G7(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외에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새로운 나라들이 등장했다. 그 결과 G20이 '지구촌의 비공식 운영위원회(informal global steering committee)'로서 G7외에 신흥국까지 포함하게 된 것이다. G20의 등장은 새로운 경제질서 창출에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도 함께 참여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G20 정상회의 한국 개최의 의미는 무엇이며 한국에 어떤 기회가 될 것인가.
◆브라질 대사=G20은 훨씬 포괄적인 형태다. G20은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까지 포괄하는) 미래지향적인 시스템이다. 이런 점에서 신흥경제국의 대표주자 가운데 하나인 한국에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은 의미가 크다. 골드만삭스는 대표적인 신흥경제국으로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를 꼽았지만 개인적으로 BRIICKs(브라질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한국)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G20 외에도 다른 여러 형태의 국가별 그룹짓기가 시도될 것이다. 다양한 시도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로선 G20이 글로벌 시스템에서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영국은 지난해 4월 런던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한국이 올해 G20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영국 대사=회의를 통해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11월까지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겠지만 정상회의를 통해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미리 잡아야 한다. 일부 의제들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한국은 개최국으로서 G20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새로운 의제들을 주도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또한 폭넓게 자문을 구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이 런던을 방문하는 등 영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배로니스 시리티 바데라 총리실 정책보좌관을 G20 한국자문관으로 파견했다. 한국은 2008년 의장국이었던 브라질이나 차기 개최국인 캐나다와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특히 중요한 것은 G20 이외 국가들의 기대와 의견을 두루 파악하는 것이다. G20이 전 세계 국가를 모두 대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땐 각국이 긴밀하게 협조했으나 '급한 불을 끈' 후엔 이견이 더 부각돼 공조를 이루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사공 위원장=다양한 이슈들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G20 지도자들은 물론 다른 나라들도 1930년대 초 전 세계가 국제공조 합의에 실패해 대공황을 면치 못했던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다. 대공황 초기였던 1933년 영국 런던에서 66개국이 모인 '세계경제회의'가 개최됐지만 환율안정 등을 위한 합의에 실패했다. 이번엔 위기 초기에 G20 정상들이 만났고 합의를 이뤄냈다. 무엇보다 첫 회의에서 6개월 이내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세 번째 모인 피츠버그 회의에서는 과도기인 2010년엔 6월 캐나다와 11월 한국에서 두 차례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2011년부터는 매년 열기로 합의했다. G20을 '제도화'한 것이다. 역사적인 교훈과 그간의 정상회의 과정을 볼 때 충분히 이견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브라질 대사=각국은 '겸손'해야 한다. 로마제국처럼 한 나라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려 해선 안 된다. G20은 보다 민주적이어야 한다. 서로의 걱정거리를 공유해야 한다. 세계가 처한 문제는 매우 복잡해서 G5나 G8,심지어 G20만으로도 해결하기 힘들다. G20을 도와 줄 더 많은 국가들을 확보해야 한다. 새로운 '리더'가 되려 해선 안 된다.
◆사공 위원장=이상적으로는 유엔처럼 G192가 돼야 한다. 그러나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G7이 생겨났고 G20으로 확대됐다. 한국과 브라질 같은 신흥국들은 G20 외 172개국을 대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개발 경험이 있다. 따라서 개발의 주요 이슈와 개발에 따르는 고통 등을 잘 알고 있다. 다른 나라들보다 개도국의 입장을 잘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G20 국가들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 (GDP)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G20 국가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브라질 대사=(한국이나 브라질은) 중간자 또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가르치려 해선 안 된다. 합의를 이끌어내는 컨센서스 메이커(concensus maker)가 돼야 한다. 이 점에선 브라질에서 배울 게 있다. 브라질엔 아랍 · 유럽 · 인도 · 일본 · 한국인 등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산다. G20도 각국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영국 대사=정상들이 피츠버그 회의에서 합의한 '세계경제협력을 위한 최상위 포럼'이란 표현이 핵심이다. G20은 '최상위' 포럼이긴 하지만 '유일한' 포럼은 아니다. 무엇보다 G20은 글로벌 정부가 되려는 게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지구촌 문제해결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형태인 것이다.
"서울회의서 글로벌 금융안전망 강화 논의…위기재발 막아야"
◆사회=의제에 대해 얘기해보자.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불균형 해소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됐다. 특히 중국의 환율문제는 G20 등 국제회의 틀에선 전면적인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는데.
◆사공 위원장=글로벌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선 경상수지 흑자국과 적자국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 경상수지 흑자국,특히 중국은 내수부양책을 쓰는 등 글로벌 재균형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왔다. 동시에 미국 등 적자국도 가계를 중심으로 재균형에 기여하고 있다. 비록 경기부양책 때문에 정부의 적자가 늘어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미국의 저축률은 높아지고 있다. 의도적이든 시장메커니즘에 의해서든 글로벌 재균형이 진행 중이다. 위안화 환율문제에 관해선 중국이 점점 더 유연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중국은 다른 나라들이 중국의 환율제도가 글로벌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변수라고 지적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브라질 대사=위안화 환율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 달러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기 때문에 (달러가치를 떨어뜨려) 자신들의 투자가치를 평가절하하기 어렵다. 현재 중국과 미국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간에 존재했던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적이 핵공격을 가할 경우 상대편도 전멸시켜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행해지는 핵 억제전략)'와 같은 '상호확증 통화가치평가절하(mutual assured devaluation)'관계다. 달러화 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중국 경제도 악화될 것이다. 또 위안화 가치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나머지 나라들의 경제가 고통받을 것이다.
◆사회=한국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11월께에는 세계경제가 위기의 터널을 벗어나고 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성장의 새로운 모델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사공 위원장=미국은 더 이상 지구촌이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최종 소비처가 될 수 없다. 경상수지 흑자국과 신흥경제국들이 미국의 수요 감소에 따른 갭을 메워야 한다. 글로벌 성장의 중요한 원천은 경상수지 흑자국과 신흥·개도국들이 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선 신흥·개도국들이 외환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충분한 '글로벌 금융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 이러한 안전망이 없으면 소규모 개방경제는 자체 안전판인 외환보유액 확충을 위해 경상수지 흑자에 집착하는 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 글로벌 금융안전망 강화는 한국이 서울 정상회의에서 추가하려고 노력하는 의제 중 하나다. 글로벌 차원의 금융안전망은 지역적인 수준의 협력 체제나 국가 간 통화스와프협정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녹색산업 관련 분야에서 신성장동력이 생겨날 것으로 본다. 기후변화 문제는 도전이자 부담이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영국 대사=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은 한국이 가장 신경써야 하는 핵심 이슈다. 지난해 11월 G20 재무장관회의 때 합의된 바에 따르면 G20 국가들은 1월 말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 각국의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IMF는 이를 상호평가한 후 4월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6월 캐나다 정상회의 때 정책제안들이 마련되고 이는 11월 정상회의에서 보다 구체화될 예정이다. 한국은 (캐나다와) 공동 개최국으로서 올해 내내 이 과정을 이끌어갈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잘 진행해가는 것이 한국이 해야 할 일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브라질 대사=사공 위원장이 언급한 금융안전망은 브라질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다. 이와 관련해 IMF는 개혁돼야 한다. 몇 가지 처방전만으로 세계에 무엇을 하라고 가르쳐선 안 된다. 미국에 대해서는 왜 어떻게 하라고 제시하지 않는가. 보다 보편적이고 균형잡힌 IMF가 돼야 한다.
◆사공 위원장= G20 정상들도 이전 회의들에서 IMF가 개혁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IMF가 보다 강한 감시기능을 갖춰야 하고 조기경보 기능도 강화돼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IMF의 감시활동이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사회=IMF 지배구조 개혁의 주요 이슈는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개혁돼야 하는가. 또 IMF 쿼터 일부를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이전하는 민감한 이슈는 어떻게 다뤄야 하나.
◆사공 위원장=피츠버그 회의에서 정상들은 IMF쿼터를 과다대표국에서 과소대표국으로 이전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이를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것은 매우 기술적인 과정을 필요로 한다. 어떤 종류의 공식을 쓸 것인가를 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과다대표 선진국에서 과소대표 개도국으로만 쿼터를 이전할 것인지,아니면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과다대표된 신흥국으로부터도 쿼터를 이전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브라질 대사=지속적이고 균형잡힌 성장이란 의제와 관련해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기후변화 문제다. 산업이 환경을 무시하고 무한정 성장할 순 없다. 기후와 산업성장 간에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의 녹색성장 모델은 좋은 예다. 경제가 안 좋다고 기후변화대책은 나중에 생각하자는 것은 잘못이다. 또 한 가지 경제성장 및 기후와 연계된 중요한 문제가 식량안보다.
◆사공 위원장=식량안보와 에너지안보 문제는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논의될 것이다.
◆영국 대사=기후변화는 경제성장이나 환경보전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둘 다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쉽진 않다. 결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코펜하겐의 결과가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포기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향후 활동하게 될 '환경'이 어떤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
◆사회=그동안은 경기부양책에 무게가 실렸지만 이제는 재정적자 문제를 더 걱정해야 하는가.
◆사공 위원장=중장기적으로 본다면 재정 건전화는 중요한 이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이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도 아직은 재정적자가 심각한 수준이 아니지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은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위기 극복 방안을 먼저 다뤄야 했다. 아직도 경기부양책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만한 때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이제는 경제상황이 나아지고 있으니 중장기적으로 재정을 안정화하는 데도 신경 써야 한다. 소위 출구전략의 이행시점을 정하는 것도 재정 안정화와 연계돼야 한다.
◆사회= G20은 2008년 1차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신규 보호무역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보호무역조치들이 늘어났다는 지적도 있다. 어떻게 하면 실질적인 약속이행이 이뤄질 수 있겠는가.
◆영국 대사=보호무역조치가 늘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1930년대와 달리 각국은 관세를 올리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고 있다. 이 점에선 성공적이다. 물론 일부 반덤핑 조치 등이 있지만 상대국의 덤핑으로부터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이런 조치는 막을 수 없다.
◆사공 위원장=몇 가지 보호무역이라 할 만한 조치들이 취해지긴 했지만 다행히 어떠한 조치들도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도전할 만큼 심각한 것은 없었다. G20 정상들이 합의한 덕분이다. 또한 G20이 합의를 강제할 권한은 없지만 세계무역기구(WTO)가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나라의 이름을 공개해 부끄럽게 만드는 '거명해서 창피주기(naming & shaming)'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정상들의 합의이행은 꽤 성공적이었다. 물론 지금 가장 중요한 글로벌 무역이슈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하는 것이다.
◆사회=끝으로 각국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제이슈와 전망에 대해 언급해달라.
◆영국 대사=영국은 지난해 말 경기침체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다행인 것은 실업률이 몇몇 다른 나라들만큼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갈길이 멀다. 앞으로 힘든 몇 년이 될 것이다. 정부의 재정적자도 매우 유의해서 살펴봐야 한다. 올해는 선거도 있다. 새 정부는 재정적자 감축과 관련해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브라질 대사=브라질의 주요 관심은 내수부양이다. 브라질은 자본이 없어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한다. 한국이나 영국 스페인 등 다른 나라 기업들이 진출해 투자를 해주길 희망한다. 브라질 정부는 빈부 간의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사공 위원장=한국은 적어도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보다 빠르다. 그러나 주로 공공부문과 정부의 재정지출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민간소비나 투자는 아직 활발하지 못하다. 올해 정부의 전망대로 5%의 경제성장은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보건의료와 헬스케어 교육 등 서비스 분야의 강력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정리=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