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원 · 검찰청 이전 작업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지역 상권을 좌지우지하는 위력을 가진 청사 이전은 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이전 대상지를 찾기도 어려워 더디게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거북이 걸음이지만 꾸준히 달려온 결과 새해엔 개원과 착공이 봇물을 이룬다. 변호사 법무사 등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연쇄 이동 준비도 본격화하고 있다.

◆2010년은 이전의 해

28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5개 법원(또는 지원)이 내년부터 줄줄이 완공된다. 서울에선 내년 4월 서울북부지법이 집들이를 한다. 노원구 공릉동을 떠나 도봉구 도봉동에 새로 둥지를 튼다. 서울지역에서 법원이 이사하는 것은 2001년 서울남부지법과 서울서부지법 이후 9년 만의 일이다.

서울가정 · 행정법원도 기존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서초구 양재동으로 옮겨 2012년 6월 개원한다. 1989년 입주한 서초동 법조타운이 포화상태여서 독립하는 것이다. 지방에선 대구지법 영덕지원,광주지법 목포지원,춘천지법 원주지원 등 3곳이 2010~2012년 사이에 새로운 보금자리에 입주한다.


또 내년에는 울산지법,수원지법 여주지원,대전지법 공주지원 등 3곳이 새로 착공한다. 광주가정지원은 2010년 또는 2011년에 첫삽을 뜬다. 이들 청사는 2012~2013년 사이에 완공될 예정이다.

땅값 문제로 지지부진하던 서울동부지법의 이전 작업도 진척을 보이고 있다. 송파구 문정지구로 이전을 추진한 법원행정처는 이달 중순 서울시 SH공사와 최대 난관이던 부지 공급 가격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법원행정처는 2011년 부지 조성공사가 끝나면 2012년 설계를 한 뒤 2013년 착공할 계획이다. 완공 시기는 2015년으로 잡고 있다.

이 밖에 수도권에선 의정부지법,수원지법,수원지법 성남지원 등이 이전 필요성을 제기하거나 이전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 이해관계 첨예하게 대립

법원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것은 기존 자리가 비좁고 건물이 낡았기 때문이다. 기존 건물은 70년대에 지어 비가 새는 곳이 있을 정도인 데다 소송이 늘면서 사무 공간도 턱없이 부족해졌다. 의정부지법의 경우 사건 수가 계속 늘어 별관만 3개를 신축한 상황이다. 테니스장 부지 등 남아 있는 공간에 건물을 올렸지만 더 이상 별관을 올릴 빈자리가 없다.

이사를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탓에 법원 이전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법원을 유치하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 주민들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인다. 실제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 위치한 논산지원의 경우 지원이 빠지면 도시 자체가 공동화될 수 있어 주민들이 이전에 결사 반대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최영락 기획심의관은"지방 중소도시에선 법원이 지역 전체 상권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지역 주민 간 마찰이 많아 법원 이전 작업이 거북이 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전 지역은 땅값,건물향,교통,주변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지를 선정한다. 주민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땐 청사건축위원회(위원 18명)를 열어 객관적으로 이전 부지를 선정한다. 이전 부지는 새로 조성하는 택지개발지구를 선호한다. 넓은 부지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데다 기반시설도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오른쪽 · 검찰은 왼쪽

법원은 검찰청과 함께 이전한다. 법원과 검찰청이 반드시 붙어 있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검찰 쪽에선 이동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어 법원과 같이 붙어 있는 것을 선호한다. 이때 정면에서 봤을 때 법원은 오른쪽,검찰청은 왼쪽에 자리 잡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국 거의 모든 청사가 이런 배치를 하고 있다. 신청사의 크기는 10~15년 뒤 사건 수를 고려해 결정한다. 그러나 2002년 개원한 인천지법의 경우 사건 증가가 예상치를 추월하면서 지은 지 7년 만에 벌써 비좁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과 검찰청의 건물 층수와 연면적은 거의 비슷하다. 서로 협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치를 봐 가면서 결정한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판사와 검사가 서로 자존심 경쟁을 하다 보니 과거엔 첨탑 하나라도 더 올려 상대보다 높게 보이려 했다"고 전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