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 기아자동차그룹이 24일 실시한 임원인사에는 '품질과 판매의 극대화'라는 내년 경영 키워드가 그대로 녹아 있다. 임원 승진자의 40%를 연구개발(R&D) 및 품질 · 생산부문,30%는 판매 · 마케팅 부문에서 각각 발탁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재편 속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 경쟁력을 유지하고,철강 · 부품 · 운송 등 관련 사업 전반에 걸쳐 공격 경영의 고삐를 죄겠다는 뜻을 임원 인사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R&D · 품질 전문가 전성시대

정몽구 회장은 지난 13일 '2009년 글로벌 품질전략 컨퍼런스'가 열린 자리에서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품질 마케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품질을 최우선 성장동력으로 삼아 브랜드 이미지를 혁신하겠다는 것으로,2000년대 초에 뒤이은 '제2의 품질경영' 선언이었다.

정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이런 의지를 그대로 반영했다. 현대 · 기아차의 연구소 인력 중 상당수를 승진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연구소는 내년 하반기 쏘나타급 하이브리드카를 개발,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던질 예정이다.

품질력과 직결되는 부품 사업을 총괄하며 그룹 지주사 전환을 추진 중인 현대모비스의 위상 강화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룹 내 7명의 부사장 승진자 중 3명이 현대모비스 소속이다.

김순화 미국 앨라배마 법인장과 송창인 품질본부장,김한수 구매담당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명함을 바꾸게 됐다. 그룹 관계자는 "저탄소 녹색 성장 분야에서 첨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연구인력의 사기를 높인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수년 내 최고 수준의 품질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R&D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주문"이라고 말했다.

◆"판매 극대화만이 살 길"

내년에 치열한 '생존 게임'을 예고하고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를 대폭 강화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김용환 신임 부회장은 현대차와 기아차의 해외영업본부장을 두루 거쳤고,기획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중용은 현대 · 기아차의 글로벌 판매 역량을 더욱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김태남 현대차 서울남부지역본부장과 함명창 현대차 부산경남상용지역본부장,김창식 기아차 판매추진실장,서춘관 국내마케팅실장 등 판매 · 마케팅 전문가들이 상무 또는 이사로 한 계단씩 승진했다. '영업통'인 김화자 현대차 여의도지점장은 현대차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됐다.

정석수 현대모비스 사장의 부회장 승진도 같은 맥락이다. 정 신임 부회장은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혁신을 통해 이를 달성하도록 만드는 '뚝심 경영'의 소유자란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정 부회장이 부임하기 직전 해인 2004년 매출 6조4359억원,영업이익 7517억원을 냈지만 작년에 매출 9조3734억원,영업이익 1조1866억원 등으로 4년 만에 약 50% 확대했다. 올해는 매출 10조원,영업이익 1조5000억원 돌파를 예상하고 있다.

◆젊은 피 수혈… 세대교체 본격화

전체적으로 정몽구 회장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도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으로의 후계 구도를 준비하는 데 초점이 모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존 경영진에 대한 교체 폭을 최소화한 데다 김동진 현대모비스 부회장,김치웅 현대위아 부회장,팽정국 현대차 사장,이용훈 현대로템 사장 등 그룹 내 부회장 및 사장급 고위 임원 4명이 퇴진한 자리에 당장 새 인물을 앉히지 않은 것은 일단 조직 안정에 중점을 둔 조치다.

대신 40대 중 · 후반의 '젊은 피'를 이사 및 이사대우로 대거 수혈,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한편 정 부회장이 추후 폭넓게 인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200여명에 달하는 신임 이사 및 이사대우급 실무 임원들은 향후 1~2년간 '정의선 체제'를 앞두고 역량을 테스트받게 됐다.

그룹 관계자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임원 승진 인사엔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해 세대교체 기반을 서서히 준비하겠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