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해 이맘때면 그렇듯이 거리에는 어김없이 자선냄비가 등장했고,나눔의 행복온도계는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어렵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이웃을 향한 온정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개인적으로 기쁨을 줄 뿐 아니라 사회적 통합에도 도움을 준다. 우리가 이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기부는 대부분 주는 기쁨을 얻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된다. 기부를 통해 어려움에 빠진 이웃이 이를 이겨내는 것을 보면 마치 나의 일처럼 즐거워진다. 그래서 주는 기쁨은 받는 사람과의 정서적 유대가 존재할 때 커지게 마련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개인간 정서적 유대가 약화되면,사회의 안정을 바라는 기업이나 단체의 기부가 늘게 된다. 최근 들어 인터넷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이웃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개인간의 유대감도 다시 회복되면서 다수의 소액기부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부금은 여전히 개인보다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의 2008년 자료를 보면 총 모금액은 2703억원인데 이 중 65.3%가 기업에 의한 것이다.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2008년도 사회공헌 비용은 실태 조사에 답변한 기업만을 합하더라도 2조1600억원에 이른다. 이것은 기업 경상이익의 4%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업의 기부금 수준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미 2004년에 미국과 일본의 기업이 각각 세전이익의 1.68%,1.39%를 기부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기업은 1.83% 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개인 기부금도 적지 않다. 2007년도 근로소득 자료에 따르면 기부금을 신고한 근로자는 근로소득신고 대상자의 43.4%였다. 이들이 기부했다고 신고한 금액은 4조700억원가량으로 급여의 13.8%를 차지한다. 어쩌다 알려지는 미담소식을 보면 남모르게 이웃을 돕는 개인들도 적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나 개인의 기부만으로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손길이 닿지 않는 어려운 이웃에 대해 정부가 최소한의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서 정부는 민간부문보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조세를 통한 강제적 기부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조세를 통해 가난한 이웃을 돕게 되면 주는 기쁨과 받는 감사함이 사라진다. 주는 사람은 누가 받게 될지 모르고,받는 사람은 누가 주는지 알 수 없다. 주는 사람은 빼앗기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받는 사람은 정부가 해주어야 할 당연한 일로 여긴다. 또한 정부가 중간에 끼어들게 되면 낭비가 많아 자발적 기부금보다 많은 액수의 세금을 걷어야 한다. 더구나 정부의 예산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보다 정치적으로 목소리 큰 이익집단에 재분배될 가능성이 많다.

정치인들은 남의 주머니에서 더 많은 세금을 꺼내 표를 챙기는데 힘쓰게 마련이고 받는 사람은 감사함보다는 정부에 대한 투쟁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래서 사회통합을 가져오기보다 오히려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회통합에도 도움이 되려면 민간의 자발적인 기부문화가 활성화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이나 개인의 기부가 늘어날 수 있도록 일반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요건을 완화하고 한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들도 남의 주머니를 털어 생색을 내지 말고 자기 주머니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앞장 서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새해에는 갈등보다 주는 기쁨과 받는 감사함이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정기화 <전남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