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3일 법 · 질서 분야 업무보고 자리에서 고위 공직자 비리 엄단을 재차 언급했다. 특히 토착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주목받았다. 법 · 질서 확립 및 토착 · 권력형 비리 근절 발언은 이미 여러 차례 했지만 이날 강도는 그 어느 때보다 셌다. 법무부에서 관련 대책을 내놓은 것과 함께 고위 공직자 및 지방 토착 비리에 대한 고강도 사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우선 "고위 공직자를 포함해 사회 지도층의 비리와 범죄에 대해 검찰이 더 강력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하면서 "그래야만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이 위로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 · 질서 지키기가 사회 전반에서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기본 인식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 하고 위에서는 범죄를 저지르면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나. 편안한 일자리가 보장된 사람이 비리를 저지르면 없는 사람들은 어깨가 처진다"고 말했다. 처벌도 중요하지만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어 "법치 기초가 탄탄하게 닦이지 않으면 나라는 성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에 대해 "요즘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걸핏 하면 정치 수사라고 비난하는가 하면…"이라며 "흔들림없이 철저히 수사에 임해 달라"고 지시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 수수 의혹'사건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원론적 발언'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충남 홍성군 공무원의 비리 사례를 거론하며 강력 대처를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충남)홍성군만 해도 670명 가운데 108명이 집단으로 예산을 빼돌리는 데 가담했다. 어떤 직원은 4496만원을 빼돌려 유흥비로 쓰고,어떤 직원은 3941만원을 빼돌려 1700만원을 고급 유흥주점에서 썼다고 한다"면서 "생계형 범죄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인 · 허가 권한을 가진 권력 주변에는 비리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며 "비리 온상에는 지역 토착세력과 사이비 언론이 결부돼 있다"고 지적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