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파키스탄 관계 악화 일로

아프가니스탄에 3만명 증파계획은 물론 철군 시작 시점까지 설정하며 대(對)테러 전쟁에 '배수진'을 치고 나선 미국이 정작 동맹국 파키스탄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불거져나오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파키스탄 내에서 암약하는 탈레반을 소탕하는 것은 물론, 아프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의 군사적 지원으로 접경지대에 은신한 무장세력을 격퇴하려는 미국의 구상이 파키스탄 측의 비협조적인 움직임으로 난관에 봉착한 것.
아프간 대(對)테러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기에 미국의 근심은 깊어가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 당국은 미국의 외교관과 정보요원, 개발 전문가, 군인 등에 대해 비자 발급과 연장을 중단해 미국이 진의 파악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 파키스탄 군부와 정보당국은 미국 외교관 100여명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거나 연장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미국 괴롭히기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 정부는 연방직할부족지역(FATA) 내 북와지리스탄에서의 조속히 군사작전을 개시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알 카에다와 탈레반에 대한 행동에 나서기로 했지만 이런 파키스탄의 노력은 자체적인 일정에 따라 추진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군 수뇌부도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셰드 아즈맛 알리 파키스탄 육군 준장은 17일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북와지리스탄에서 전투를 시작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파키스탄군이 탈레반 전사들에 은신처를 제공하고 파키스탄에서 아프간으로 무기가 흘러드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미국 측의 계속되는 의혹제기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2001년부터 탈레반과의 전투에서 2천명의 파키스탄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며 "우리의 의지를 의심하는 이런 종류의 불신에 대해 솔직히 지쳤다"고 말했다.

미국의 불신에 대한 반동으로 파키스탄군 내부에서도 미국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파키스탄이 아프간 탈레반, 특히 '하카니 네트워크'를 추적하는데 인색한 것은 미군과 나토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나서 이들을 잠재적인 동맹으로 끌어안기 위한 장기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매사추세츠대의 브라이언 글린 윌리엄스 교수는 AP와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인들은 아프간 탈레반과 하카니 조직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며 "이런 연유로 파키스탄인들은 변덕스러운 동맹국인 미국을 위한 대리전을 열심히 수행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오바마가 철군 시점으로 2011년을 구체적으로 설정해 발표한 것은 파키스탄의 탈레반 퇴치 의지를 더욱 꺾어버리는 일종의 '독배'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지지를 받는 자르다리 대통령이 국내에서 갈수록 입지가 약해지는 것도 미국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최근 파키스탄 대법원은 자르다리 대통령의 스위스 은행계좌에서 발견된 뭉칫돈에 관한 수사를 재개하라는 명령을 내려 자르다리는 정치적으로 중대한 위기에 내몰린 상태다.

대법원이 무샤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5월 단행한 국가화해명령(NRO)이 위헌이라고 판결함에 따라 NRO에 따라 사면을 받았던 자르다리 역시 다시 수사선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최근 파키스탄과의 관계에 계속 균열이 일고 있는데 대해 미국 정부와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재설정하지 않으면 미국이 결코 아프간전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 섞인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