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게임업체 롱투가 개발한 웹게임 '무림제국'의 국내 비공개 시범서비스가 시작된 지난 9일.5분도 채 지나지 않아 2000여명의 게이머가 몰려들었다. 초반 사용자 폭주에 '무림제국' 게임 화면에 랙(lag:통신이 일시적으로 정지하거나 응답장치에 응답이 없는 현상)이 발생할 정도였다. 서비스를 맡은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중국 게임을 처음으로 선보였는데도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차별화에 성공한 중국 게임

국내 시장에 중국 게임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높은 시장성 때문이다. 지난 7월 CJ인터넷이 서비스를 시작한 '심선'은 초반 동시접속자 수가 2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라이브플렉스의 '천존협객전'은 매달 1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릴 정도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처럼 중국산 온라인 게임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데 대해 "인터넷 인구만 3억명이 넘는 중국 시장에서 검증을 거친 데다 시간이 갈수록 콘텐츠가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림외전' '심선' '무림제국' 등 최근 국내에 들어오는 중국 게임들은 모두 현지에서 인기 순위 10위 안에 드는 게임들이다. 넥슨이 계약한 '열혈삼국'은 웹게임 분야 1위에 올라 있다.

과거 '중국 게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짝퉁'이었다. 한국 게임 '미르의 전설'을 베낀 '전기세계',넥슨의 '카트라이더'를 모방한 '카트레이서',넥슨의 '메이플스토리'를 베낀 '쾌락서유' 등 중국 게임업계는 한국에서 뜬 게임을 빼다박은 '모조품'을 내놓기에 급급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중국업계는 폭발적인 내수시장 성장세와 풍부한 스토리를 등에 업고 게임의 품질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부각시킨 게임들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자기들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위 · 촉 · 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완미시공의 '적벽 온라인'이나 '신선되기'라는 특이한 미션을 수행하는 플레이타운의 '심선'이 그런 경우다. 이런 게임들은 중국적인 가치관을 기반으로 서양 판타지 일색인 기존 게임들과 차별화를 이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게임시장,새로운 시도 업고 급팽창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클라우드토드의 '천존협객전'은 캐릭터뿐 아니라 무기도 레벨에 따라 성장하는 시스템으로 게이머들의 호응을 얻었다. 거인이라는 개발사가 만든 '정도 온라인'은 게임 내에서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캐시를 주는 일종의 '월급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해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2006년 10억달러였던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 규모는 지난해 25억달러로 커진 데 이어 올해는 34억달러로 불어났다. 과거 중국 게임업체의 약점이던 운영 노하우도 크게 나아졌다. 100만명 이상의 동시접속자를 견뎌내는 일이 일상화하면서 서버 관련 기술이 크게 발전한 것이다. 최승우 넥슨재팬 대표는 "텐센트를 비롯해 완미시공 샨다 등 나스닥 상장 중국 게임업체들은 웬만한 한국 게임개발사보다 규모가 크고 게임을 만드는 시스템도 체계화돼 있다"고 전했다.

◆한국 안방까지 넘본다

중국산 게임은 한국에 앞서 다른 해외 시장에는 일찌감치 진출했다. 한때 한국 게임의 텃밭이나 다름없었던 동남아시아 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유럽 시장까지 진출하며 한국 게임의 인기를 앞지를 태세다. 태국 게임업체 게임월드의 윤성권 이사는 "중국 게임이 한국 게임보다 훨씬 싼 데다 서양식 판타지 스타일인 한국 게임보다 현지인들에게 문화적으로 더 친숙하다"며 "게임 용량이 비교적 작아 동남아 지역의 저사양 PC에서 돌아간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독일 게임업체인 아체(ACE)의 김동승 사장은 "최근 유럽에서도 완미세계와 같은 중국 게임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다양한 장르와 콘텐츠가 현지 소비자들에게 먹혀들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업체들이 '무림외전' '천존협객전' 등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이 게임들이 이용하기 쉽다는 점이다. 중국 게임들은 대부분 퀘스트(게임 중에 맡은 임무나 역할)를 받으면 해당 사냥터까지 자동으로 이동하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들어가 있다. 이동하기 위해 들판을 헤맬 필요가 없다. 초보 유저에게도 좋은 시스템이다.

한국 게임이 안방마저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업계가 중국 게임의 진출을 수수방관하다가는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잠식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