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 자식이 있다. 이복 자식끼리 혹은 본처와 혼외 자식이 재산을 둘러싸고 무섭게 싸운다. 축재를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양심도 영혼도 없다. 정략결혼을 위해 자식의 가난한 애인을 돈이나 협박으로 떼어낸다. 비자금을 만들어 정치인과 뒷거래를 일삼는다. '

국내 드라마에서 공식처럼 그려지는 기업인,특히 대기업주의 모습이다. 악착같아진 이유도 비슷하다. 과거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과 세상에 대한 복수다. 80년대 초반 잠시 기업과 기업인을 긍정적으로 다룬 드라마가 등장했으나 그때뿐 드라마 속 기업인은 거의 늘 부정적인 존재다.

특히 지난해 여름부터 올봄까지 방송된 '에덴의 동쪽'(MBC)에 이르면 상상을 초월한다. 극 중 태성그룹 회장 신태환은 악의 화신이다. 부잣집에 장가 들기 위해 자신의 아기를 임신한 여성을 납치,뱃속의 아기를 강제로 없애고 재개발을 위해 깡패를 동원,달동네를 밀어 없앤다.

정경유착에 경언유착까지 끌어올 수 있는 온갖 어두운 요소를 모았다. 기업주는 냉혹하고 술수와 야합에 능하다는 식의 상투적 묘사는 남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자주 등장하는 여성 기업인 역시 비열하기 짝이 없다. '멈출 수 없어'(MBC)의 여사장은 교통사고로 사람을 해치는 일을 밥 먹듯 한다. 고약하기는 '아내가 돌아왔다'(SBS),'다함께 차차차'(KBS)의 여사장 역시 마찬가지.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처지 따윈 안중에 없다.

바로 이 같은 드라마들이 안그래도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반(反) 기업 정서를 더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명환 용인송담대 교수가 한국광고주협회 조찬간담회에서 발표한 'TV드라마에 나타난 반기업 정서에 관한 연구'가 그것이다.

오 교수는 이런 식의 기업(인) 흔들기가 40년 동안이나 계속돼왔다며 이제부터라도 문제를 불식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라마는 허구지만 시청자는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지 않는다. 실제 재벌의 삶을 모르니 극 속 모습을 사실처럼 여기는 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치지도외하기엔 일반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 보인다. 이문열씨가 지난 2월 한 강연에서 우리 사회,특히 문화 종교 학교 쪽에 반기업정서가 팽배해 있다며 '친 기업 분위기 형성에 좀더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그같은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