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능성 베개전문기업 트윈세이버(대표 황병일)의 영업팀 고 모 대리는 요즘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트윈세이버는 지난해 말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약 1억2500만원을 지원받아 제품 디자인을 바꿨다. 이에 힘입어 올 들어 예년 매출의 약 3배인 34억여원어치가 팔렸다. 이에 앞서 회사는 2006년 고급 소재를 사용하고 베개 중앙의 높이를 낮추는 특수설계로 코골이 현상을 줄일 수 있는 기능성 베개를 개발해 내놨지만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꽃 무늬가 들어간 이른바 '촌스러운 디자인' 탓이라고 느낀 황병일 대표는 지난해 6월 디자인진흥원의 디자인개발사업을 알게 됐다. 약 6개월의 개발 기간을 거쳐 성능은 동일하지만 디자인만 새롭게 적용한 업그레이드 버전 '맥스Q'를 출시했다. 내년 매출은 50억원에 이를 것으로 회사는 전망한다.

#2.셋톱박스 전문회사인 빅슨(대표 여수종)은 지난해 약 1900만원을 들여 무광실버 색상의 셋톱박스를 개발했다. 회사는 올해 이 제품으로만 약 1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투자금액 대비 790배가량의 성과를 올린 셈이다. 비결은 최근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깔끔한 디자인.기존 회사의 셋톱박스 및 경쟁사 제품과 성능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튀지 않는 색감에 단순한 버튼 모양 등 심플한 디자인이 적용돼 TV 등 다른 전자제품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 각광받았다.


보기 좋고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을 만든다는 목적을 넘어 디자인을 기업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는 '디자인 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진행했던 '디자인개발지원사업'을 통해 디자인 개선사업 및 개발사업 지원을 받은 43개 중소기업은 업체 1곳당 평균 2억500만원을 투자받은 뒤 연 매출이 평균 약 71억원에서 108억원으로 37억원 정도 늘어났다. 투자 대비 18배의 매출 증대 효과를 거둔 셈이다.

국내 기업의 디자인 수준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기업들이 디자인 개발에 투자를 늘리고 디자인 전문인력 양성에 나서는 등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대기업의 평균 디자인 투자금액은 회사당 57억1000만원인 데 비해 중소기업은 1억3000만원에 불과했다. 이영선 한국디자인진흥원 사업본부장은 "중소기업들은 초기 투자 부담으로 디자인 개선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며 "정부의 중소기업 디자인사업 지원 강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5조2000억원이었던 국내 디자인 관련 산업 규모가 2012년에는 14조4000억원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역량 있는 디자인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디자인과 마케팅이 별개로 움직이는 업계의 관행도 개선이 시급하다. 국내에선 주로 전문업체의 외주제작을 통해 디자인을 만드는 경우가 태반인 데 반해 디자인 강국인 미국,호주,유럽 등에서는 디자인과 마케팅을 모두 기업 내부에서 맡으면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브랜든 기언 호주공업표준청(ADA) 디자인 감독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로열티를 받는 대신 작품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는 환경이 되어야 이른바 '명품브랜드'가 나올 수 있고 디자인을 통한 국가브랜드 인지도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