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키코(KIKO) 관련 손실로 위기에 몰렸던 중견기업 일성이 우리투자증권으로부터 지분투자를 받고 각고의 노력 끝에 기사회생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긴급자금대출이나 모회사의 납품조건 개선 위주였던 키코 해법에 새로운 성공 사례를 제시했다는 평가다.

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우리투자증권은 보유 중인 일성 지분 23.37% 중 11.45%(매입가 98억원어치)를 최근 창업투자회사 인터베스트에 126억원을 받고 팔아 28.5%의 수익률을 올렸다. 통상 자기자본투자에 나선 증권사들의 목표수익률이 연 20% 안팎인 데다 남은 지분을 일성이 상장(2011년 예정)될 때 매각,차익을 실현할수 있음을 감안하면 빼어난 성과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8월 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일성에 200억원을 투자했다.

석유화학 플랜트에 사용되는 열교환기를 제조하는 일성은 중동 국가들의 플랜트 증설 바람에 힘입어 2004년 이후 수주잔액이 매년 36%씩 증가했다. 그러다 2007년 달러로 받는 수주대금의 환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가입한 키코가 화근이 됐다. 2008년 들어 원 · 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800억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한 것.연간 100억원 내외의 영업이익을 내는 일성으로서는 감당하기 버거웠다. 더구나 발주처인 플랜트 업체들은 수주업체를 선정할 때 재무상태를 따지는 만큼 키코 손실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추가 수주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우리투자증권이 일성 측에 "지분투자 방식으로 자금을 수혈해 주겠다"고 제안한 때는 작년 6월께.남동규 PI그룹장은 "투자 대상 기업을 물색하던 중 일성을 알게 됐는데,일시적인 자금난만 해결해주면 충분히 회생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은 면밀한 분석을 통해 향후 10년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연평균 70달러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이 경우 중동지역의 플랜트 투자는 연 평균 23% 정도 늘어 일성의 고성장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재무건전성이 중요한 일성 같은 기업은 지분투자를 통해 부채비율을 낮춰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증권사의 자금수혈을 계기로 신용도가 높아지면서 대출상환을 종용하던 은행들이 속속 만기를 연장해왔다. 유동성 위기를 벗어난 일성은 생산과 구매부문에서 업무개선을 통해 원가를 7~15%가량 줄였다. 환헤지 비중도 수금액의 80% 수준에서 50~60% 정도로 낮췄다. 원자력발전과 태양광 발전에 들어가는 열교환기를 새롭게 개발하는 등 사업영업 확장을 위한 준비도 착실히 진행했다.

이에 따라 일성은 올 상반기 1300억원의 매출과 29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5%,118% 급증했다. 하반기 들어 중동지역의 플랜트 발주가 급격하게 늘기 시작해 내년에는 실적 개선폭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장성훈 일성 전무는 "올 상반기엔 동종 업계에서 가장 많은 1000억원가량을 수주했다"고 말했다.

김태환 중소기업중앙회 국제통상실 부장은 "일성의 사례는 일시적인 자금난에 몰린 기업에 대해 증권사가 정확한 리스크 분석을 바탕으로 지분투자를 단행해 서로가 '윈윈'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