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액화석유가스(LPG) 수입 · 제조 판매 6개업체에 6689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해당 업체들은 행정소송을 불사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기업들이 담합했다면 공정위가 이에 합당한 제재조치를 내리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과징금 규모도 그렇고, 담합행위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음에도 공정위가 이들이 수긍할 만한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데 있다.

한마디로 공정위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다. 시장구조의 특성이나 주무부처의 행정지도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업계만 때려잡으면 그만이란 식의 행태를 공정위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이런 주장에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암암리에 행해지는 행정지도를 공정위가 모를 리 없는데도 내 알바 아니란 식이면 기업들만 골탕먹으라는 얘기밖에 안된다.

뿐만 아니라 이번 LPG의 경우처럼 가격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담합으로 단정짓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제품의 특성이나 시장구조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가격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담합이라고 하면 극단적으로는 완전경쟁을 통한 가격수렴도 담합으로 의심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담합한 사실도 없고, 증거도 불충분하며, 소명할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업계의 의견을 공정위가 무시한 것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공정위가 내린 판단과 제재가 법원에 가서 번번이 뒤집혀지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업계의 항변(抗辯)은 설득력을 갖는다. 한마디로 앞뒤를 가리지 않는 무리한 결정을 했다는 결정적 증거와 다를 바 없다. 처음부터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지 법원에서 뒤집히거나 과징금이 대폭 깎이는 일이 되풀이되면 공정위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정위가 지나치게 리니언시 제도(자진신고자 감면제도)에 의존하는 것도 문제다. 실적을 올리기에는 이만한 수단이 없다고 공정위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담합 주도자들이 오히려 이익을 보거나, 기업들간 불신이 증폭되는 부작용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자체적 조사와 합당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말 그대로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그런 공정위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