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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침에] 구치소에서 부르는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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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소자들 앞에서'문학'과 '시'에 대해 말하려니 처음에는 많이 떨렸다. 고상한(?) 이야기를 하면 반응이 없을 텐데….걱정이 많이 되었다. 내 직업이 대학교수인 것도 그들이 거리감을 갖는 주요인이 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나를 쳐다보는 재소자들의 눈빛은 싸늘했다. 그들은 모두 가슴에 수인번호가 붙어있는'죄수'들이었다. 아이디어를 냈다. 3년 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자.

    6 · 25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낙담해 있는 어머니(나의 외할머니)와 여섯 동생의 끼니 해결을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든 내 어머니의 고생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사 10년에 문방구점 주인 30년,농사꾼 10년….남편은 만년 실업자였고 자식 중 하나는 젊은 날에 입원하여 당신 돌아가시는 날까지 돌봐주어야 하는 환자였다. 어머니 자신도 한평생 병치레를 한 환자였다.

    내가 그 동안 어머니의 속을 얼마나 썩혀드렸는지를 말하기 시작하자 그들의 굳은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모범생처럼 생긴 저 양반이 저런 불효를 저질렀을 줄이야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쳐다보면서 그들은 호기심 반 놀라움 반의 표정을 지었다.

    강의가 끝날 즈음에 누군가 이렇게 소리쳤다. "교수 양반! 다음에 오실 때는 빵 좀 사다 주소.크림빵,소보루빵 먹어본 지가 하도 오래 돼서…" 빵을 먹고 싶어한 40대의 재소자는 빵집 이름까지 대면서 그 집 빵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 다음 주에,바로 그 빵집의 빵을 한보따리 들고 갔다. 1인당 2개씩은 돌아갔고,빵을 먹고 싶어한 이는 4개를 움켜쥐었다. 그들은 정말 맛있게 빵을 먹었고,나도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미소 띤 얼굴로 빵을 먹는 나를 쳐다보았다. 빈말로 했는데 내가 약속을 지켜 다들 의외인 모양이었다.

    그날 나는 어머니에 대한 작문을 쓰게 했다. 아아,이들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옥살이를 하고 있는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외국으로 돈 벌러 간 줄 알고,외양선 타러 간 줄 알고….7남매,6남매,5남매….

    다들 가난했고,많이 배우지 못했고,유혹에 약했다. 어떤 이는 욱하는 성미에 주먹을 휘둘렀고,어떤 이는 마약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어떤 이는 동업자를 배신했고,어떤 이는 배신한 애인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열아홉 살에 시집 와서 우리 5남매를 낳았고 장남이신 아버지 밑으로 9남매의 시동생,삼촌과 고모들까지도 어머니는 끌어안고 시집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할머니와 고모들 등쌀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어머니.아버지는 광산업을 해서 늘 객지에 나가 있었고…." 가출과 전학,패싸움으로 이어지는 성장기 스토리를 낭독하며 중년의 재소자는 목이 메었다.

    또 다른 이는 어머니 소재의 작문을 읽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와 열 몇 살 나이 차가 나는 어머니는 가난하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싫어할까봐 한평생 고운 옷 한번 입지 않고 허름한 옷만 입으며 노동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어느 날 어머니를 업어드린 적이 있는데 의처증 아버지 밑에서 숨소리도 죽이면서 지내던 그 어머니가 아들이 업고 방을 돌자 감격에 겨워 엉엉 울더라고 하면서 자신이 그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신종플루 때문에 이들과의 만남이 세 번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나는 빵을 함께 우걱우걱 씹어 먹었던 영등포구치소에서 만난 10명의 재소자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분들이 쓴 어머니 소재의 작문과 함께.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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