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주 필리핀대사의 '파격 행보'가 외교가에 화제가 되고 있다. 격식과 의전을 중시해야 하는 대사 직위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역상사 직원이라도 되는 양 필리핀 시골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며 양국 간 경제협력 사안들을 발굴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필리핀대사로 부임한 이래 지금까지 항공기 배 승용차 등을 이용해 지방출장을 다녀온 것만 40번이 넘는다.

의상과 언어 사용도 눈에 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필리핀 전통의상인 '바롱(barong)'을 입고 다녀 필리핀 관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필리핀 직물산업청은 지난달 최 대사를 '바롱 홍보대사'로 선정하고 필리핀 현직 장관 4명과 함께 바롱 패션쇼에 모델로 초빙하기도 했다.

행사 때는 필리핀 토속언어인 타갈로그(Tagalog)어로 연설을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정도의 흉내가 아니라 유창하고 긴 문장을 사용한다. 영어조차도 필리핀식 억양과 발음을 쓴다. 연설 때마다 환호와 집단 화답이 터져나오는 장면은 대사관 직원들에게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다. 비행기를 탈 때는 언제나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것도 대사로선 파격이다.

최 대사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답게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필리핀 경제발전 모델 '복합산업단지'(MIC · Multi Industry Cluster) 구상이다. 양국 정부 합의 아래 필리핀에 10만㏊ 규모의 복합산업단지를 50년 장기임차 방식으로 조성해 농 · 수산업과 관련 제조업,친환경 레저산업을 유치하는 계획이다. 지난 5월 양국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외무장관 간에 'MIC 조성 타당성 조사 실시에 관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최적 후보지 중 하나인 보홀주를 설득하기 위해 비행기 두시간에 배 두시간 거리인 보홀주까지 수 차례 찾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보홀주는 최 대사를 '보홀의 아들'로 선포하기로 하는 등 끈끈한 애정을 나타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 · 필리핀 포럼'에 상원 여당 원내대표와 필리핀 정부 고위관료들이 대거 참석한 것도 최 대사 특유의 '발품외교'가 빚어낸 성과라고 대사관 관계자는 전했다.

최 대사는 "대사에게 맡겨진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이라는 게 지론"이라며 "자원외교와 녹색성장이 중요한 지금 필리핀과 같은 자원 저개발국과 유대관계를 굳건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