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신의 계시(啓示)를 의심하는 신도는 아무도 없었다. 믿음이 확실해야만 비행접시가 내려와 구해낸다는 말에 집도 직장도 버린 채 기도에 매달렸다. 그런데 예언의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교주가 말했다. "여러분의 믿음이 강해 신이 지구를 구하기로 했노라." 신도들은 예언이 빗나간 데 대해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인류를 구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1954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현장에 잠입했던 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는 이를 토대로 '인지 부조화 이론'을 주창했다. 인간은 믿음과 실제가 다를 경우 실제를 왜곡하고 믿음을 선택해 부조화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1992년엔 우리나라에서 다미선교회의 휴거(携擧 · 들어 올려짐) 소동이 벌어졌다. 10월28일 자정 예수가 재림할 때 휴거가 일어난다며 흰 옷을 차려 입은 신도들이 선교회에 모여들었다. 오후 9시께 '평택에서 예수가 꽃마차를 타고 재림했다'는 소문이 떠돌자 장내는 들끓었다.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 나방을 보고도 휴거의 전조라 했다. TV카메라까지 동원되며 법석을 떨었지만 당연히 휴거는 없었다.

종말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엔 2012년이 종말의 해라고 한다. 유카탄 반도에서 출토된 마야달력이 기원전 3114년 8월 시작해 2012년 12월21일에 끝난다는 게 근거다. 행성 엑스(X)가 지구와 충돌한다거나 지구 자기장이 역전돼 생태계 혼란이 온다는 설도 나돈다. 미지의 행성이 지구로 돌진하는 상황을 설정한 재난 영화 '2012'가 12일 전 세계 동시 개봉되는 것도 종말론에 불을 지르고 있다.

이례적으로 NASA(미 항공우주국)가 지구멸망론은 근거 없는 괴담이란 입장을 밝혔다. 현재 '에리스'란 행성이 우주 공간을 떠돌고 있긴 하지만 태양계 밖이어서 지구에는 전혀 영향이 없으며,마야달력도 2012년 12월21일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 새 주기가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세상이 뒤숭숭하면 종말론이 기승을 부린다. 그 만큼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위기로 각국이 실업대란을 겪고 있는데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하기 때문일까. 아무튼 종말론에서 얻을 건 별로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할 일을 차분히 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일찍이 순자(荀子)도 뜬소문은 현명한 자에 이르러 멈춘다고 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