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49 · 사진)이 9일 정식 임명장을 받고 G20 기획조정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3월 금융위 출범과 함께 부임한 지 1년8개월 만이다.

정부 관계자는 "보직상 두 자리는 같은 차관급으로 수평 이동이지만 G20 정상회의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감안하면 내용상으로는 승진"이라고 말했다. 당초 G20 기획조정단장에는 관련 부처 업무를 조율할 실무 능력을 갖춘 고위급 경제 관료가 기용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지만 민간 출신의 이 부위원장이 발탁된 것이다.

이와 관련,금융위의 한 간부는 "이 부위원장은 학계 출신 인사 중 관료사회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한 케이스"라며 "전문성은 물론 관료사회에 대한 높은 이해와 낮은 처신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관료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금산 분리 완화,산업은행 민영화 등 금융개혁 과제를 관철시키는 조용한 추진력도 보였다. 지난해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한국 금융 바로 알리기'를 제안,차관급 직위임에도 불구하고 외국계 금융회사 애널리스트와 직접 텔레컨퍼런스를 하고 해외 언론사를 방문하는 열의를 보였다.

이 부위원장은 "역대 부위원장들의 사진을 보면서 '중간은 해야 되는데'라고 했는데 낙제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 "작년 10~11월 국제 금융위기 때는 국가 부도 주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생각에 아찔했다"며 "당시 외환보유액 등 지표상으로 보면 국가 부도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해외에서 우리를 불안하게 봤다"고 회고했다.

그는 "표나지 않게 모자란 점을 채워준 금융위 간부들 모두 내게는 선배"라며 "제 잘난 맛에 모래알 같은 조직생활을 해 왔던 교수로서는 기대하지 못했던 대우였다"고 모든 직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개 외부 출신 인사들은 '굴러온 돌'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왕따를 당하고 관료조직에 적응하지 못해 단명하게 마련"이라며 "이 부위원장이 좋은 '롤 모델(role model)'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