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이징 도심인 궈마오 근처의 가전양판점인 다중덴치에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하이신 등 중국 토종 브랜드의 제품 가격이 삼성 같은 글로벌업체에 비해 거의 반값에 팔리고 있어서였다. 똑같은 40인치 LCD(액정표시장치) TV인데 삼성 제품은 6199위안의 가격표가 붙어있고 토종업체인 하이신 브랜드엔 3599위안이 적혀있었다. 46인치 TV는 삼성 제품이 8199위안에 팔리는 반면 역시 토종업체인 창홍의 소비자가격은 4899위안이었다. 20~30% 정도에 달했던 토종과 글로벌업체의 판매가격 차이가 이젠 50%대로 커지며 '경쟁이 불가능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토종업체들이 파는 가격이면 적자를 봐도 크게 보는 게 정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적자를 기록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중국에 공장을 가진 글로벌기업들은 토종업체처럼 이 정도 가격에 팔리는 제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글로벌 회사들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 같은 상황이 나타난 원인은 뭘까. 답은 대부분 중국 기업들이 국영기업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제품 판매에서 적자를 보면 국영은행이 메워주는 것은 중국에선 오래된 일이다. 심지어 최근엔 국유지를 떼어주고 부동산개발을 하도록 해서 적자를 보전하기도 한다는 소문이다. 중국의 회계와 경영이 불투명한 관계로 이 모든 정황은 미뤄 짐작할 수밖에 없긴 하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가격으로 팔면서 이익을 내는 것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니까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가전업체들은 실질적으로는 '주식회사 중국'과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살벌한 비즈니스 환경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중국 내수시장 진출에 시사점이 크기 때문이다. 13억 인구를 갖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은 놓칠 수 없고 놓쳐서도 안 되는 시장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묻지마 진출'은 곤란하다. 중국에 한국 의류를 들여와서 팔겠다며 베이징에 의류매장을 냈던 K씨는 넉 달 만에 문을 닫았다. 그는 한국의 고급 기성복을 가져다가 판매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결국엔 몸에 안 맞는 옷을 팔겠다고 나선 셈이 됐다. 그는 "중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타기 때문에 팔 길이가 한국 사람보다 길다는 것을 몰랐다"며 "판매 타깃이 고소득층이었는데 돈 있는 사람들이 한국 제품이라고 팔도 안 맞는 옷을 사겠느냐"며 씁쓸히 웃었다.

시장환경 조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중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 중국 사람들은 수싸움에 능하다. 마작이나 바둑 장기 같은 게임이 발달해 있는 이유는 이들이 수싸움을 즐기기 때문이다. 협상을 하든,거래를 하든 상대방에게 쉽게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고 비장의 카드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충칭에서 엘리베이터 사업을 하는 웨스트엘리베이터 권오철 총경리는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적어도 3년간은 백수로 지내며 중국 사람과 함께 뒹굴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을 배우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얘기다. 보기좋은 떡도 급하게 먹으면 체하게 마련이다. 하물며 적진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판이다. 중국 내수시장 진출은 차분하게 준비한 뒤 신중한 전략을 짜지 않으면 안 된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