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의 미디어는 '문화'를 뛰어넘어 '산업'의 영역으로 진화할 채비를 마쳤다. 난산을 거듭한 끝에 시행될 미디어법의 개정 취지는 미디어 시장을 새로운 고용창출과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1980년 언론기본법 제정 이후 고착화돼 있던 시장 질서에 새롭고도 강력한 에너지를 유입시킴으로써 창의성과 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산업으로 일구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앵무새 같은 앵커들의 멘트에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시사프로그램들,'막말''저질방송'에 질색을 하는 시청자들로선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 구도 파괴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실제 미디어법의 핵심인 신문과 방송의 장벽 제거,기업들의 미디어 진출 허용은 기존 방송 문화를 뿌리째 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자기 혁신을 할 수 있는 경영시스템과 다양하고도 참신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간접광고 가상광고 등의 허용도 방송 · 광고 · 음악 · 미술산업의 융 · 복합화를 통한 시너지를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영화와 드라마 등을 통해 이미 한류바람을 불러일으켰던 한국 특유의 경쟁력이 결집한다면 역량있는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시장 확대에 따른 글로벌 시장 진출도 한층 용이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상파 버금가는 방송채널 등장

방통위가 내년 상반기 중에 1~2개의 종편 사업자를 선정할 경우 종편채널은 빠르면 2011년 초에 개국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드라마 등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소요되는 물리적 시간 탓에 1년 남짓 준비기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종편이 방송을 시작하면 지상파 유형의 방송채널이 4개(EBS 제외)에서 1~2개가 더 늘어나게 된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천편일률적인 지상파 3사의 채널 외에 새로운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셈이다. 시청률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어 방송산업의 동반 발전을 기대해볼 수 있는 여건이다. 신규 사업자들은 기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미디어 간 융합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함으로써 시장확대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박천일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종편채널의 가세는 시청자들이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정부는 종편채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지상파방송처럼 특정 채널번호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KBS1 채널이 9번인 것처럼 종편채널에 8번이나 10번 등의 채널번호를 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신규 종편채널에 대해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세제 지원은 물론 채널번호 지정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유료방송 가입해야 종편 시청

종편채널과 지상파방송의 차이점은 전파로 방송을 송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KBS 같은 지상파방송사들은 전국 곳곳에 중계소를 세워 가정에서 안테나 등으로 TV 시청을 할 수 있도록 전파를 쏘고 있다. 그러나 종편채널은 안테나 혹은 공청시설로는 시청할 수 없다. 다만 케이블TV,위성방송,인터넷TV(IPTV) 등 유료방송에 가입하면 누구나 시청할 수 있다. 종편채널은 의무전송채널이어서 유료방송에서 의무적으로 방영하기 때문이다. 유료방송 가입자가 전국 가구의 90%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대다수 국민이 종편채널을 시청할 수 있는 셈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KBS2 MBC SBS 등의 지상파채널과 달리 종편을 의무전송채널에 포함시킨 것은 초창기 지상파와의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신규 사업자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정책적 배려"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방송 광고 나온다

방송광고 규제완화도 포함돼 있다. 드라마 중간에 광고가 나오는 중간광고와 소품 등의 제품 로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간접광고,스포츠 경기장에 광고를 입히는 가상광고 등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 그것이다. 중간광고는 지상파방송에서는 금지돼 있지만 케이블채널(PP)에는 이미 허용돼 있어 OCN 같은 영화채널에서 20~30분 간격으로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종편채널도 마찬가지다. 지상파방송과 달리 종편에서는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고 있는 중간에 광고가 나올 수 있다.

소품의 제품 로고를 그대로 노출해주는 간접광고(PPL)도 허용돼 드라마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쉽게 분간할 수 있게 된다. 미국 미식축구 경기를 TV로 시청하다 보면 운동장 바닥에 코카콜라 같은 광고가 입혀져 있곤 한다. 실제 경기장에는 없지만 TV 화면에 광고를 입혀 마치 경기장에 광고판이 서 있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가상광고 규제도 풀렸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