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과 감독업무를 총괄하는 정부기관인 금융위원회와 민간 감독기구인 금융감독원의 불협화음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금감원이 상급기관인 금융위와 사전 협의 없이 정책보고서 발표를 추진,물의를 빚는가 하면 서민금융과 소비자 보호 업무를 놓고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금감원은 '위기 이후의 금융감독과제'를 주제로 '한국판 터너보고서'를 28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금융위와 사전 협의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기한 연기한다고 27일 밝혔다.

이 보고서는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3월 말 취임 1주년을 맞아 금융감독 업무의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담은 연구 결과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이후 금감원이 7개월여간 야심차게 준비해온 결과물이다. 금감원은 이 보고서를 영국 금융감독청(FSA) 로드 터너 의장이 발표한 금융감독 업무 개선방안을 '터너 보고서'로 부르는 것을 빗대 '한국판 터너보고서'라는 별칭을 달았다.

보고서에는 헤지펀드 감독 강화,임직원 보상체계 개혁,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제도 개선 등 주요 금융감독 정책 방향이 담겨 있으나 발표 하루 전날 금융위가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과 검사를 본연의 업무로 하는 금감원이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와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단독으로 정책보고서를 내는 것은 문제"라며 배경을 설명했다.

서민 금융지원과 소비자 보호 업무를 두고도 금융위와 금감원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금융위가 저신용층을 위한 소액신용대출 사업인 '미소금융'을 적극적으로 추진키로 한 가운데 금감원은 은행권에 서민 신용대출 상품인 '희망홀씨' 판매를 독려하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기구의 설립을 놓고도 금융위는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금감원은 "기존 업무와 중복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두 기관 모두 고위급 채널의 소통에 문제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금융위와 금감원의 수장을 분리하면서 생긴 구조적인 문제라며 금융감독 정책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서는 금감원을 금융위 산하 정부기관으로 공식 흡수하는 등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