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를 극도의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황우석 사태'가 막을 내리는 모양이다. 사법부가 황 박사의 논문 조작과 연구비 횡령에 대한 유죄를 선고했다. 물론 사법적 판단이 끝나려면 좀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핵심은 서울대 조사와 사이언스 논문 철회로 마무리됐던 과학기술계의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 모두가 황 박사 사태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다.

황우석 사태는 과학기술계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에게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모두가 고약한 마법에 걸려 버렸던 셈이다. 그러나 아직 그런 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사법부 판결까지 나온 과학기술계의 명백한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회의원과 지자체의 정치인들이 있다. 과학기술은 화려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성실한 연구를 바탕으로 발전한다는 평범하고도 확고한 진리를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우선 우리 모두가 허황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진국들이 줄기세포 연구에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줄기세포 연구가 더 이상 위축돼서는 안된다. 줄기세포 연구에 큰 희망을 걸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다만 그동안 우리의 줄기세포 연구가 위축됐으니 무작정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성급한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과학기술계가 줄기세포 연구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그동안 들떴던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과학기술계의 책임이 막중하다. 물론 황 박사 사태가 과학기술계만의 잘못 때문에 생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황 박사 사태로 극도의 혼란을 경험한 국민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계가 앞장서서 노력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에게 우리 과학기술계가 줄기세포 연구를 책임지고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갖췄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물론 생명과학자들이 무거운 책임감과 신중한 자세로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연구윤리와 생명윤리를 국제적 수준으로 강화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문제라도 적극적으로 찾아내 반드시 고치겠다는 각오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과학기술계만 노력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정작 고쳐야 할 정말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정부가 연구 · 개발(R&D) 투자 결정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기 위한 확실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대규모 과학기술 투자에 대해서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정책적 판단과 결단은 철저하게 제도의 틀 안에서 전문가의 엄정한 평가를 근거로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져야만 한다. 몇몇 비전문가들의 개인적인 친분에 휩쓸린 불투명한 정치적 판단은 화근(禍根)이 될 수밖에 없다. 황 박사의 경우가 그랬다. 과학에 제3의 요소가 개입했을 때 과학자의 윤리가 얼마나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를 황우석 사태는 잘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우리 현실은 여전히 불안하다. 정부 조직개편에 따른 연구지원기관의 정비가 끝나지도 않았고,과학기술 정책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조직도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자라 보고 놀란 후라서 그런지 솥뚜껑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이 우리 과학기술계의 현실이다. 연구개발투자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를 하루빨리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그것이 혹여 발생할 수도 있는 제2의 황우석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