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친일인명사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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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동심초'의 작곡가 김성태 옹이 이달 20일께 출판예정인 '친일인명사전'명단에서 빠지게 됐다. 그는 '기미가요' '대일본의 노래' 등을 연주한 악단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친일파가 됐다. 그러나 가족들이 나서서 광주학생운동 때 반일시위하고 13일 동안 서대문구치소에 감금되고 경신학교에서도 퇴학당한 기록을 찾아내서 지난 6월 그 오명을 벗었다는 것이다. 오는 11월 백수(白壽 · 99세)를 맞이하는 노 음악가는 "백수기념음악회보다 더 기분 좋은 소식이 친일파 지정 취소결정"이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김 옹의 사례는 친일인명사전이 가지는 여러 문제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분은 그야말로 애국자인데 억울하게 친일파의 탈을 쓸 뻔했던 것이다. 사전 발간은 원래 작년 8월,이어 금년 광복절에 예정됐으나 이렇게 이의신청이 계속돼 미뤄져 온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처음 골라낸 명단은 4776명이었으나 그 중 350여 명을 해방시키고 최종 4430명을 수록하기로 결정했다. 그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김 옹 같은 소명(疏明)의 행운을 얻지 못하고 원통한 이름을 역사에 남기겠는가. 친일심판관들은 최소한 65년 전의 단편적 자료에 근거해 오늘의 잣대로 선인(先人)들을 재단했다. 다른 시대 다른 심판관은 아마 또 다른 수천 명의 명단을 추려낼 수 있을 것이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명단을 보며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마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김동인 김성수 박정희 안익태 이광수 장지연 홍난파 현제명…. 모두 우리 민족을 이끌고 우리의 정서를 채워준 선각자 지도자 창작가들 아닌가. 이제 우리 마음에서 이 거인들을 모두 지워버려야 하는가. 친일은 분명히 민족반역의 행위지만 이들이 그때 행동한 뜻을 지금 우리가 다 알 수 있을까.
김성수는 일제 말기 친일기관에 이름을 남기고 강연한 죄로 명단에 올랐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의 교육,물산과 언론 사업을 일으킨 지도적 인물인 그는 실상 당시 모든 사람이 한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민족의 항일정신을 일깨운 장지연은 그가 쓴 몇 개의 글이 '친일 성향'이라고 명단에 올랐다. 생전을 민족의 계몽과 실력향상에 전력한 이광수는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했다"고 밝혔다.
노기남이 친일단체에 간여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희생"이라고 천주교 서울 대교구는 주장한다. 김동인은 중일전쟁이 일어났을 때 서울에서 완장을 두르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운형을 목격하고,"몽양은 그런 일에 나서서 뺑뺑 돌기를 좋아하는데,방공연습 같은 때는 좀 피해서 숨어버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한심스러이 그의 활보하는 뒷모양을 바라보았다"고 썼다. 그런 김동인은 명단에 오르고 좌익정치가인 여운형은 빠졌다.
친일사전은 단지 기록에 불과하다. 그러나 발간자의 의도가 이들에게 친일파의 탈을 씌워 두고두고 징계할 거리로 삼자는 것에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사전편찬 작업은 지난 60년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규정한 정권이 주도했고 그런 색깔의 사람들이 친일 명단을 추려냈다.
인권유린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남에게 누명을 씌워 이용해먹으려는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특정이념에 쏠린 사람들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필자는 오늘날 가장 지독한 반민족행위가 인민을 노예처럼 부리는 북한에서 저질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의 만수대의사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고 서명해 축복해주었다. 이성을 가진 사람들은 친일인명사전이 나올 때 이를 철저히 무시할 것이다.
김영봉 < 중앙대 명예교수·경제학 >
김 옹의 사례는 친일인명사전이 가지는 여러 문제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분은 그야말로 애국자인데 억울하게 친일파의 탈을 쓸 뻔했던 것이다. 사전 발간은 원래 작년 8월,이어 금년 광복절에 예정됐으나 이렇게 이의신청이 계속돼 미뤄져 온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처음 골라낸 명단은 4776명이었으나 그 중 350여 명을 해방시키고 최종 4430명을 수록하기로 결정했다. 그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김 옹 같은 소명(疏明)의 행운을 얻지 못하고 원통한 이름을 역사에 남기겠는가. 친일심판관들은 최소한 65년 전의 단편적 자료에 근거해 오늘의 잣대로 선인(先人)들을 재단했다. 다른 시대 다른 심판관은 아마 또 다른 수천 명의 명단을 추려낼 수 있을 것이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명단을 보며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마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김동인 김성수 박정희 안익태 이광수 장지연 홍난파 현제명…. 모두 우리 민족을 이끌고 우리의 정서를 채워준 선각자 지도자 창작가들 아닌가. 이제 우리 마음에서 이 거인들을 모두 지워버려야 하는가. 친일은 분명히 민족반역의 행위지만 이들이 그때 행동한 뜻을 지금 우리가 다 알 수 있을까.
김성수는 일제 말기 친일기관에 이름을 남기고 강연한 죄로 명단에 올랐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의 교육,물산과 언론 사업을 일으킨 지도적 인물인 그는 실상 당시 모든 사람이 한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민족의 항일정신을 일깨운 장지연은 그가 쓴 몇 개의 글이 '친일 성향'이라고 명단에 올랐다. 생전을 민족의 계몽과 실력향상에 전력한 이광수는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했다"고 밝혔다.
노기남이 친일단체에 간여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희생"이라고 천주교 서울 대교구는 주장한다. 김동인은 중일전쟁이 일어났을 때 서울에서 완장을 두르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운형을 목격하고,"몽양은 그런 일에 나서서 뺑뺑 돌기를 좋아하는데,방공연습 같은 때는 좀 피해서 숨어버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한심스러이 그의 활보하는 뒷모양을 바라보았다"고 썼다. 그런 김동인은 명단에 오르고 좌익정치가인 여운형은 빠졌다.
친일사전은 단지 기록에 불과하다. 그러나 발간자의 의도가 이들에게 친일파의 탈을 씌워 두고두고 징계할 거리로 삼자는 것에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사전편찬 작업은 지난 60년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규정한 정권이 주도했고 그런 색깔의 사람들이 친일 명단을 추려냈다.
인권유린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남에게 누명을 씌워 이용해먹으려는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특정이념에 쏠린 사람들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필자는 오늘날 가장 지독한 반민족행위가 인민을 노예처럼 부리는 북한에서 저질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의 만수대의사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고 서명해 축복해주었다. 이성을 가진 사람들은 친일인명사전이 나올 때 이를 철저히 무시할 것이다.
김영봉 < 중앙대 명예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