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촉발한 미국이 점차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새싹이 돋듯 경기 회복 징후를 일찍이 언급한 전문가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다.

그는 지난 3월15일 미국 CBS방송에 출연해 '그린 슈트(새싹 · green shoots)'론을 내놨다. FRB가 기준 금리를 낮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자 기업으로 돈이 돌고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떨어지는 등 자금시장부터 맥박이 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국 주식시장은 이 무렵부터 회복세를 탔다. 다만 부동산시장은 일부 반등 기미가 엿보이지만 바닥을 완전히 찾지는 못했다. 고용시장은 얼어붙어 있고 소비시장은 위축돼 있다. 실물부문을 포함한 미국 경제가 본격적인 성장세로 돌아서려면 늦어도 내년 상반기 이후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곰은 숲속으로 사라져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10,000 고지를 재탈환하기 위해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다. 7일 현재 다우지수는 9694.82.전고점인 2007년 10월9일 14,164.53에서 경제위기가 휘몰아치면서 지난 3월9일 6547.05까지 반토막 이상 났으나 이후 7개월 만에 48%나 반등했다. 약세장을 상징하는 곰이 일단 물러난 셈이다.

주가 급반등을 이끈 견인차는 경기 회복세다. 미국의 경제성장률 추이가 이를 대변한다. 지난 1분기 -6.4%였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분기 -0.7%로 크게 나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미국의 GDP 성장률 예상치를 종전보다 0.7%포인트 높인 1.5%로 조정했다.

흥미롭게도 미국 증시 역사에서 10월은 중대한 변곡점 역할을 했다. 1929년 대공황 시작을 알린 주가 대폭락과 1987년 '검은 월요일'로 지칭되는 주가 대폭락은 모두 10월에 일어났다. 하루 주가 하락률이 7%를 넘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와 지난해 금융위기 폭락장이 재연된 것도 10월이었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11번의 약세장에서 10월 한 달 주가가 상승할 경우 증시는 강세장으로 전환했다. 10월은 상장 기업들이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달이다. S&P500지수에 속한 기업들의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평균 25% 감소했을 것으로 시장은 추정하고 있다. 과거 통계상 3분기 다우존스지수와 S&P500지수는 2분기보다 평균 15% 올랐다.

◆부동산은 바닥 탐색중

주식시장과 달리 부동산시장은 회복세가 강하지 않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시장의 거품이 터진 뒤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 주요 20개 대도시의 주택가격 변화를 추적하는 S&P실러20지수는 지난해 10월 158.2였지만 올해 7월 144.23을 기록했다. 2006년 최고치보다 33.5%나 하락한 수준이다. 지난 2월 146에서 3,4,5월 139대로 떨어졌다가 다시 반등하는 등 혼조세다.

지난 8월 현재 신규 및 기존 주택 판매 건수는 지난 1월보다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속도라면 매물로 나와 있는 기존 주택 물량이 소화되는 데 8.5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의 11.3개월보다는 훨씬 짧아졌다. 신규 주택 소진 속도는 2007년 이후 최단기간인 7.3개월로 단축됐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을 얻어 주택을 구입한 미국인들 5500만명 가운데 현재 주택가격이 대출액을 밑돌아 물밑에 잠긴 건수는 23%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다 실업률은 증가 추세다. 일자리를 잃어 소득원이 차단되는 사례가 많아 주택 압류와 연체율이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의 지원책이 연장되고 있다. FRB는 국책 모기지 업체들이 발행하는 채권(2000억달러)과 모기지 관련 증권(1조2500억달러) 매입을 당초 연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내년 3월 말까지로 연장했다. 시장에 자금을 3개월 더 지원하는 조치다. 주택을 처음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8000달러의 세금공제 혜택도 11월 종료 예정이었으나 연장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일자리,일자리,일자리

2008년 1월 4.9%였던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9월 9.8%로 1년8개월 만에 꼭 두 배로 상승했다. 198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07년 12월 경기 침체 시작 이후 총 72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올해 안에 실업률이 10%를 돌파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몇 달 전부터 이를 예고했다. 백악관은 7870억달러의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마련하면서 실업률을 8%대 아래로 묶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여지없이 빗나갔다. 아직 집행하지 않은 부양자금이 60% 남아 있어 두고볼 일이나 고용시장 사정은 녹록지 않다. 부양책을 동원하기 전 한 달에 사라진 일자리가 평균 70만~80만개였지만 부양책 이후에는 이를 밑돌아 위안을 삼을 뿐이다. 지난 9월의 경우 26만3000명이 실직했다.

문제는 고용시장 악화가 소비시장의 악화로 연결되는 악순환이다. 실업에 대한 불안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닫게 만든다. 미국인들의 저축률은 위기 이전 거의 0%에서 최근 5%로 급상승했다. 소비가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이르는 만큼 소비가 늘지 않으면 경제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다. 속도가 느린 경제 성장은 고용시장 회복을 다시 지연시킨다.

미국 재무전문가협회가 지난 5일 금융권 재무책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9%는 내년까지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14%만이 고용을 늘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응답했다. 지난 8월 미국의 공장주문 실적은 전달에 비해 0.8% 감소했다. 지난 3월 이후 5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