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경제공동체에서 정치적 통합체로 나아가기 위한 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정치통합의 발판이 될 유럽연합 개정조약(리스본 조약)이 그동안 걸림돌로 여겨졌던 아일랜드 국민투표에서 비준됐기 때문이다. 아직 체코와 폴란드 대통령의 서명이 남아있긴 하지만 리스본 조약은 내년중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1957년 독일 프랑스 등이 경제통합의 첫발을 내딛게 한 로마조약을 체결한 지 52년 만에 EU는 경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통합체로서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됐다.

EU의 진화는 그 자체로 국제질서의 재편성을 의미한다. 이번 금융위기로 G7이 쇠락하고 G20가 부상한 것도 그렇지만 EU의 변화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지난해 투표에서 반대가 많았던 아일랜드가 금융위기 여파로 사상 최악의 침체를 겪자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고 이것이 새로운 탈출구를 찾게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EU는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대응하기 위해 통합체로서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장 우리로서는 EU와의 FTA가 어떻게 귀결될지가 관심이다. 다행히 리스본 조약에 따라 회원국에 대한 EU 의회의 권한이 강화될 경우 한 · EU FTA 비준은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통합 EU가 국제사회에서 환경문제 등에 더욱 큰 목소리를 내게 될 경우 유럽 수출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보다 큰 차원에서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언제까지 말로만 그쳐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세안과 더불어 한 · 중 · 일이 이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것이 EU에 비견될 공동체로 발전하기에는 이해관계가 너무나 복잡하다. 결국 핵심인 한 · 중 · 일 세 나라가 중요하다. 문제는 세 나라가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긴밀해졌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긴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상호 신뢰(信賴)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얘기다. 일본의 하토야마 신임 총리가 아시아 중시 구상을 내놨지만 구체적인 실천 로드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인 공동체로 급속히 진화하는 EU의 모습은 한 · 중 · 일을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 공동체에 커다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