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시장 리스크 회피 전략] 보금자리ㆍ장기전세 등 선택폭 넓어져…느긋해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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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 중심, 신규 분양으로 옮겨가 기존 물건 거래 부진
호가 오른다고 과도한 대출ㆍ추격매수 금물…추가 상승 가능성 따져야
호가 오른다고 과도한 대출ㆍ추격매수 금물…추가 상승 가능성 따져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주요 아파트들의 가격 하락세를 지켜본 투자자들이 투자를 할 때 위험 회피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들의 매매가가 단기간이나마 꺾이는 것을 목격한 수요자들 사이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를 맹신하기보다는 향후 추가 상승가능성을 꼼꼼히 따지고 본인의 자금 동원력을 냉정히 저울질하며 리스크를 관리하는 모습이다. 이제 시장에서는 무리하게 빚을 얻어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옛날 이야기가 되고 있다. 지역적 호재에 맞물려 호가가 오르더라도 추격 매수세는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출금 줄어들어
우선 주택을 매입할 때 전체 자금에서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 114가 올해 1~3월까지 재건축을 추진 중인 잠실주공 5단지 아파트를 매입한 수요자들을 조사한 결과,42명 중 60%인 26명이 대출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아파트를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출을 받더라도 대출 규모는 주택 구입액의 30% 수준을 넘지 않았다. 이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을 이용한 경우는 두 명에 불과했다.
42명 중 주택을 매입하고 입주한 경우는 한 사람에 불과했다. 주택 구입자들이 투자 목적으로 아파트를 샀다는 얘기인데도 대출 규모는 크지 않았던 것이다.
일반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도 제한적이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지난 6월 3조8000억원으로 정점을 찍고 지난 8월 3조2000억원까지 줄어든 상태다.
부동산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수요자들이 무거운 대출 부담을 떠안고 주택 매입에 나서는 데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수 기업은행 부동산팀장은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고 있지만 상당수는 신규 분양에 따른 것이고,주식투자를 위한 대출도 많아 대출이 주택 신규매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 "대출로 집을 사는 수요자들은 아무래도 현금이 부족한 서민들인데 이들의 경우 보금자리주택이나 서울시 장기전세주택 등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줄어든 추격 매수
상황이 이렇다보니 호가가 올라가면 수요자들이 올라간 호가에 맞춰 주택을 사는 '추격매수'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수요자들이 대출규모를 줄이면서 동원할 수 있는 실탄 자체가 줄어들어 수요자들이 상승한 호가에 심리적으로 거부반응을 느끼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타고 상반기 주택시장에서는 매도자들이 앞다투어 호가를 올렸지만 매수세는 좀처럼 따라붙지 않았다.
과천의 김현숙 우리공인(한경 베스트공인) 대표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수요자들이 똑똑해졌다"면서 "2008년 이전만 하더라도 분위기가 조금 좋을 때 호가가 올라가면 수요자들은 매입에 나섰지만 최근에는 호가가 조금만 오르면 관망세가 오래 지속된다"고 말했다. 양천구 목동 VIP공인(한경 베스트공인)의 김현승 대표도 "목동의 경우 전용면적 85㎡를 기준으로 아직 최고가보다 2억원 정도 싸지만 시세보다 500만~1000만원 비싼 호가에는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수요자들이 조급해하기보다는 싼 물건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수요자들이 이처럼 '느긋'해진 이유로 정부의 주택정책을 꼽았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기존 주택 매매시장에서 추격매수세가 붙으려면 다른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서 집값이 오를 거라는 인식이 많아야 한다"면서 "주택 매매심리는 개선됐지만 정부가 신규 분양에 혜택을 주는 데다 보금자리주택까지 대규모로 내놓다보니 수요자들의 눈이 기존 주택보다는 신규분양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가도 안전성이 우선
부동산 매입에 따른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려는 모습은 상가시장에서도 관찰된다. 대부분의 수요자들이 단순히 상가를 분양받기보다는 더 비싼값을 치르더라도 임대가 되는 상가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임대료를 낼 세입자가 있어야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하는 상품인 만큼 확실하게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상가에만 목돈을 투자하겠다는 심리다.
2000년대 들어 분양한 테마상가가 잇달아 실패하고 일부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도 공실이 나타나는 등 상가만을 보고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리기 어려워진 데 따른 결과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장은 "신도시의 택지지구에서도 신규 공급 상가에서 공실이 발생해 투자자가 손해를 입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면서 "때문에 금융위기 이후로 상가투자자들도 임대가 맞춰져 바로 수익이 나오거나 준공이 임박해 임대계약이 끝난 상가를 찾는 투자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에는 임대가 예정돼 있어도 바로 매입에 나서기보다는 상권 활성화 여부를 3~4개월 정도 지켜본 뒤 매입 여부를 결정하는 투자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