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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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임하던 날보다 더 큰 희망과 더 큰 이상,미국의 앞에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라는 더 큰 확신을 가지고 백악관을 떠날 것입니다. " 8년(1993~2001) 동안 사실상 세계 최고의 권좌에 앉아 있던 빌 클린턴 전(前) 미국 대통령이 퇴임 이틀 전 했다는 대국민 연설의 끝부분이다.
그는 또 CBS 라디오 기자 마크 놀러가 "인생 최고의 시간이 끝난다는 게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다며 "아픈 곳을 찔렸지만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을 즐기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일에 흥미를 갖고 유용한 일을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답했다"고 적었다. (자서전 '마이 라이프')
한승수 전(前) 국무총리가 이임식을 갖고 "최종 평가는 역사에 맡기되 헌법정신에 충실한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큰 자랑이자 보람으로 생각한다"면서 목민관의 마지막 덕목은 유애(遺愛)라고 한 다산 정약용의 말을 빌려 "사랑을 남겨두고 떠난다"고 했다는 소식이다.
그런가 하면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은 이임식에서 '명예 회복과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소명 노력을 계속하겠다'며 '정관자득(靜觀自得:차분한 마음으로 사물을 볼 때 세상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이란 사자성어를 남겼지만 이임사 내내 땀을 비오듯 흘렸다고 한다.
이임식장에 선 심정은 복잡할 게 틀림없다. 영예롭게 떠나도 서운함은 남을 테고 만에 하나 그렇지 못하면 복받치는 감정을 추스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 총리처럼 여유있게 마치기도 하지만 애써 속을 감추려다 평소와 달리 말을 버벅거리거나 땀을 흘릴 수도 있다.
그래도 이임식을 가질 수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다. 휴렛 팩커드 회장을 지낸 칼리 피오리나는 이사회에서 해임 결정이 난 뒤 이임식은커녕 직원들과 작별인사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최고의 자리에서 한순간에 죄인처럼 쫓기듯 떠나야 하는 일도 수두룩하다.
자리란 유한한 것이다. 온갖 화려함 속에 오르지만 더없이 쓸쓸한 가운데 내려오게 된다. 유서를 써보면 삶이 조금은 경건해진다고 하거니와 한창 잘 나갈 때 이임식장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게 되지 않을까. 고대 로마의 개선장군 시가행진 때 마차 뒤에 탄 노예로 하여금 되뇌게 했다는 말도 기억하면 좋겠고.'모든 영광은 지나간다. 당신도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라.'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그는 또 CBS 라디오 기자 마크 놀러가 "인생 최고의 시간이 끝난다는 게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다며 "아픈 곳을 찔렸지만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을 즐기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일에 흥미를 갖고 유용한 일을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답했다"고 적었다. (자서전 '마이 라이프')
한승수 전(前) 국무총리가 이임식을 갖고 "최종 평가는 역사에 맡기되 헌법정신에 충실한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큰 자랑이자 보람으로 생각한다"면서 목민관의 마지막 덕목은 유애(遺愛)라고 한 다산 정약용의 말을 빌려 "사랑을 남겨두고 떠난다"고 했다는 소식이다.
그런가 하면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은 이임식에서 '명예 회복과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소명 노력을 계속하겠다'며 '정관자득(靜觀自得:차분한 마음으로 사물을 볼 때 세상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이란 사자성어를 남겼지만 이임사 내내 땀을 비오듯 흘렸다고 한다.
이임식장에 선 심정은 복잡할 게 틀림없다. 영예롭게 떠나도 서운함은 남을 테고 만에 하나 그렇지 못하면 복받치는 감정을 추스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 총리처럼 여유있게 마치기도 하지만 애써 속을 감추려다 평소와 달리 말을 버벅거리거나 땀을 흘릴 수도 있다.
그래도 이임식을 가질 수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다. 휴렛 팩커드 회장을 지낸 칼리 피오리나는 이사회에서 해임 결정이 난 뒤 이임식은커녕 직원들과 작별인사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최고의 자리에서 한순간에 죄인처럼 쫓기듯 떠나야 하는 일도 수두룩하다.
자리란 유한한 것이다. 온갖 화려함 속에 오르지만 더없이 쓸쓸한 가운데 내려오게 된다. 유서를 써보면 삶이 조금은 경건해진다고 하거니와 한창 잘 나갈 때 이임식장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게 되지 않을까. 고대 로마의 개선장군 시가행진 때 마차 뒤에 탄 노예로 하여금 되뇌게 했다는 말도 기억하면 좋겠고.'모든 영광은 지나간다. 당신도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라.'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