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개천의 용이 사라지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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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끼.꾀.끈보다 꿈.깡.꾹 중요해, 저소득층 교육 획기적 대책 있어야
"개천 용과(科) 사윗감은 싫다. " 딸 가진 중년여성들이 털어놓는 속마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천 용과에 속하는 남편과 살아보니 여유 없고,뭐든 아까워하고,가정보다 일이 우선이어서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윗감은 외모와 학벌 집안 성격 모두 웬만하고 무엇보다 가정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어디 흔한가. 성에 차는 신랑감이 드물다보니 서른살을 훌쩍 넘긴 딸들 때문에 다들 끙끙 앓는다. 개천 용과는 싫다지만 찾으려야 찾기도 어렵다. 예전엔 끼니를 못이을 만큼 가난해도 저 하나 똑똑하면 공부 잘해 좋은 대학에 가서 출세가도를 달릴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당연시하고 거의 모든 숙제를 컴퓨터로 해야 하니 사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으면 수업에서 배제되기 십상이다. 초등학교 실력은 고스란히 중 · 고등학교로 이어지는데 내신이 중시되니 한번 뒤처지면 영영 따라잡기 힘들다. 성적은 곧 부모의 투자에 비례한다는 얘기다.
실제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부모의 경제력 · 교육 수준과 자녀 성적과의 상관 관계를 살핀 걸 보면 조사대상 40개국 중 8번째(0.43)로 일본(0.27)보다 높다. 입시와 취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어의 경우 집값이 비싼 지역에서 1 · 2등급 비중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니 개천에서 용 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개천 용들은 그야말로 용을 쓰며 살았다. 야근은 당연하고 월화수목 금금금에 휴가 반납도 예사로 알았다. 하면 된다는 믿음 아래 성실과 열정,불굴의 의지로 최선을 다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꼴도 신통하지 않고 특별한 꾀나 끼,끈은 없었어도 무한대에 가까운 꿈이 있었고 두려움 없이 대들 줄 아는 깡(배짱)도 있었다. 그런 용기로 총알 쏟아지는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고 열사의 사막에도 갔다.
대한민국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중심축에 그들의 그 같은 열정과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이런 개천의 용들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그들이 없어진 세상엔 자식을 위해서라면 위장전입도 마다 않은 부모 덕에 번듯한 스펙을 갖게 된 이들과 그렇지 못해 일찌감치 꿈을 잃어버린 이들이 남는다.
전자는 키도 크고 얼굴도 훤하고 여유만만하고 재기발랄하다. 그러나 조금만 힘들어도 못 참고 이기적인 이들 또한 적지 않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에게 물어봤더니 요즘 대졸 신입사원들은 도전정신은 뛰어나지만 '조직 적응력'은 떨어지고 책임감과 성실성 등 기본 인성 역시 부족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정규직 신입사원의 29%가 입사한 지 1년도 안 돼 그만둔다는 마당이다. 결혼 4년 이내 신혼부부의 이혼율 또한 28.4%에 이른다. 직장과 가정 어디서나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통계다. 꿈을 잃은 이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다음 세대에 가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급감하고, 노력해도 계층 상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비율은 급증하는 게 그것이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소시민만 가득한 사회,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이 넘치는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꾹 참고 내달릴 수 있는 개천의 용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자면 무엇보다 공교육,특히 초등학교 교육부터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저소득층 교육에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은 7.3%로 OECD 평균(5.8%)보다 높지만 정부 부담률(4.5%)은 OECD 평균(4.9%)보다 낮고 민간 부담률(2.9%)은 OECD 평균(0.8%)의 3배 이상이다. 서민들은 그만큼 교육시키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아이를 낳으라고만 할 게 아니라 예산과 정책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낳을 수 있다.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그러나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어디 흔한가. 성에 차는 신랑감이 드물다보니 서른살을 훌쩍 넘긴 딸들 때문에 다들 끙끙 앓는다. 개천 용과는 싫다지만 찾으려야 찾기도 어렵다. 예전엔 끼니를 못이을 만큼 가난해도 저 하나 똑똑하면 공부 잘해 좋은 대학에 가서 출세가도를 달릴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당연시하고 거의 모든 숙제를 컴퓨터로 해야 하니 사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으면 수업에서 배제되기 십상이다. 초등학교 실력은 고스란히 중 · 고등학교로 이어지는데 내신이 중시되니 한번 뒤처지면 영영 따라잡기 힘들다. 성적은 곧 부모의 투자에 비례한다는 얘기다.
실제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부모의 경제력 · 교육 수준과 자녀 성적과의 상관 관계를 살핀 걸 보면 조사대상 40개국 중 8번째(0.43)로 일본(0.27)보다 높다. 입시와 취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어의 경우 집값이 비싼 지역에서 1 · 2등급 비중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니 개천에서 용 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개천 용들은 그야말로 용을 쓰며 살았다. 야근은 당연하고 월화수목 금금금에 휴가 반납도 예사로 알았다. 하면 된다는 믿음 아래 성실과 열정,불굴의 의지로 최선을 다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꼴도 신통하지 않고 특별한 꾀나 끼,끈은 없었어도 무한대에 가까운 꿈이 있었고 두려움 없이 대들 줄 아는 깡(배짱)도 있었다. 그런 용기로 총알 쏟아지는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고 열사의 사막에도 갔다.
대한민국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중심축에 그들의 그 같은 열정과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이런 개천의 용들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그들이 없어진 세상엔 자식을 위해서라면 위장전입도 마다 않은 부모 덕에 번듯한 스펙을 갖게 된 이들과 그렇지 못해 일찌감치 꿈을 잃어버린 이들이 남는다.
전자는 키도 크고 얼굴도 훤하고 여유만만하고 재기발랄하다. 그러나 조금만 힘들어도 못 참고 이기적인 이들 또한 적지 않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에게 물어봤더니 요즘 대졸 신입사원들은 도전정신은 뛰어나지만 '조직 적응력'은 떨어지고 책임감과 성실성 등 기본 인성 역시 부족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정규직 신입사원의 29%가 입사한 지 1년도 안 돼 그만둔다는 마당이다. 결혼 4년 이내 신혼부부의 이혼율 또한 28.4%에 이른다. 직장과 가정 어디서나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통계다. 꿈을 잃은 이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다음 세대에 가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급감하고, 노력해도 계층 상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비율은 급증하는 게 그것이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소시민만 가득한 사회,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이 넘치는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꾹 참고 내달릴 수 있는 개천의 용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자면 무엇보다 공교육,특히 초등학교 교육부터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저소득층 교육에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은 7.3%로 OECD 평균(5.8%)보다 높지만 정부 부담률(4.5%)은 OECD 평균(4.9%)보다 낮고 민간 부담률(2.9%)은 OECD 평균(0.8%)의 3배 이상이다. 서민들은 그만큼 교육시키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아이를 낳으라고만 할 게 아니라 예산과 정책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낳을 수 있다.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