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 속도를 줄인다고 해서 차량 연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일정한 속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죠."

최근 서울 양재동 현대 · 기아자동차 본사에서 만난 연비전문가 이철한씨(48 · 사진)의 얘기다. 그는 1984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후 연비 개선 현장 실험을 도맡아 왔다. 위장막을 씌운 신차 내부에 각종 계측장비를 싣고 도로를 주행하는 이도 그다.

"차종마다 차이가 있지만 분당 엔진 회전수(rpm)를 2000~2500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기름값을 아끼겠다며 무조건 가속 페달을 짧게 밟는 것은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가급적 rpm을 낮추는 게 유리한데,이를 위해서는 최고 단수로 주행해야 합니다. "

기어 단수를 높일수록 rpm을 낮게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1500cc급 소형차의 경우 시속 60㎞ 속도로 달리는 조건에서 변속기어를 4단에서 5단으로 바꿀 때 최대 50%의 연비 개선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5단 변속기 차량을 운전할 때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최고 단수인 5단으로 놓아야 최적 연비를 낼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씨는 "신호대기 때는 풋브레이크를 밟지 말고 기어를 중립(N) 위치로 놓는 게 주행(D) 위치 때보다 연료를 30~40%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변속 과정에서는 연료 소모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주행 중 내리막길에서 기어를 주행(D)이 아니라 중립(N) 위치로 바꾸는 것은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지적했다. "관성주행 때는 가속페달에서 발만 떼도 퓨얼컷(연료 주입 차단) 기능이 작동하는데,이를 중립(N) 위치로 바꾸면 오히려 기름 소모가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안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씨는 "가속이나 제동페달을 밟았다 떼는 동작을 반복하면 댐퍼 클러치가 연속 반응하기 때문에 상당량의 연료를 소모한다"며 "2000cc급 중형 세단의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발진할 경우에도 천천히 출발할 때보다 최대 33cc의 연료를 더 쓴다"고 말했다.

다른 차량을 추월할 때 순간 가속력을 얻기 위해 변속 단수를 1~2단 낮추는 운전자가 적지 않은데,이것이야말로 '연비운전의 적'이라는 게 이 씨의 지적이다. 그는 "가속페달을 5000~6000 rpm까지 밟으면 연비 저하뿐만 아니라 엔진 수명까지 단축된다"고 전했다.

공회전 역시 불필요하게 연료를 빨리 소모시키는 방법이다. 엔진 내부 오일의 유막 형성 기능을 약화시키고 미연소 가스 생성을 촉진시킨다는 이유에서다. 1500cc급 소형차를 5분간 공회전시킬 때 100cc의 휘발유가 추가 소모된다고 한다. 매일 5분씩 공회전할 경우 한 달에 약 3ℓ의 기름을 더 쓰는 셈이다.

이씨는 에어컨 연비 실험을 실시한 결과 시속 50㎞를 초과하는 고속 구간에선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는 게 그 반대의 경우보다 2~5% 연비 효율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적절한 차량 관리도 연비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비법이다. 에어 클리너와 점화플러그,엔진오일 등을 주기적으로 바꿔주면 실연비를 높일 수 있다. 타이어 공기압을 10%만 더 채워줘도 1~2%의 연비 개선 효과를 낼 수 있다. 지면과 타이어의 접지 면적을 줄여 공기저항을 낮추기 때문이다.

이씨는 "연비를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전습관"이라며 "평소 효율적인 연비를 낼 수 있는 운전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