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1년] (4) 한국 해외자원 확보율 5.7%불과…外風에 쉽게 흔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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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한국 경제 도약 'K4전략' : ④ 자원확보는 선택 아닌 필수
지난해 말 월스트리트저널은 '위기 이후'가 기대되는 국가로 ICK(India,China,Korea)를 꼽았다. 잠깐 움츠렸다 힘껏 뛰어오를 나라들이란 얘기다. 하지만 세 나라는 한 가지 공통의 '아킬레스 건'을 갖고 있다. 바로 경제 규모와 인구에 비해 부족한 에너지와 자원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인도는 무섭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늘 비교 대상으로 삼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이 낮은 가격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만 예외다. 경제침체로 에너지 수급 문제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자 자원개발 열기도 시들해진 분위기다.
◆제2의 원자재 파동 온다
최영대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석유를 비롯해 에너지와 원자재의 가격 결정 체제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경기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2008년과 같은 수급 불균형이 빚어진다면 언제 다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지 모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사전에 준비하지 않는다면 유가가 또다시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다.
물론 2008년을 전후한 원자재 랠리는 파생상품 헤지펀드 등 금융과 일부 투기 세력의 개입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경제 위기로 금융권 전체가 빈사 상태에 빠진 지금으로서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그러나 에너지와 자원 가격이 치솟는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가격이 내일을 알기 힘들 정도로 등락을 거듭하는 것 자체가 국내 기업들의 사업 판단에 '먹구름'이 될 수 있다.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수급 문제에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무섭게 뛰는 경쟁국들
세계 각국이 너도나도 자원 확보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거꾸로 이렇게 너도나도 나서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이 뛸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중국은 2006년 이후 3년 동안 에너지 분야 인수 · 합병(M&A)으로 캐나다에 77억달러,호주에 20억달러,중남미에 22억달러 등을 투자했다. 반면 한국은 캐나다에 약 3억달러,호주에 약 2억달러를 투자한 게 고작이다.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잠비아 가봉 기니 등에서 각각 구리 철광석 알루미늄 광산을 닥치는대로 사들이고 있다. 베네수엘라와는 120억달러 규모의 자원 투자 협정을 맺기도 했다. 자원 부국 중 반미 성향이 강한 나라들이 중국의 주된 타깃인 셈이다. 그 선봉에는 국영기업들이 포진하고 있다.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CNPC),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중국석유화공(Sinopec) 등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금융 지원과 중국 내 석유 개발 및 생산 판매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백분 활용해 국외 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중국이 전략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자원은 석유와 우라늄,알루미늄,철광석,구리 등으로 우리나라가 투자하려는 전략업종과 대부분 일치한다. 그 투자 규모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통이 크다. 일례로 지난 2월 중국알루미늄공사(Chinalco)는 거대 철광석 업체인 호주의 리오틴토에 195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비록 리오틴토 이사회가 인수협정을 파기하는 바람에 인수가 무산되긴 했지만 그 투자 규모는 올해 한국 정부와 민간부문을 통틀어 석유,가스,일반광물 등에 대해 투자하기로 한 총 금액 72억5000만달러의 두 배가 훨씬 넘는 수준이었다.
중국이 국영기업을 앞세웠다면 일본은 해외 자원 개발 투자를 주로 민간기업이 맡고 있다. 다만 일본 정부의 대외원조(ODA)를 지렛대로 삼아 현지 진출을 도모한다는 점에서는 중국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인펙스와 신일본석유가 대표적 기업이고 미쓰비시 스미토모 마루베니 소지쓰 등 종합상사들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수자원 개발이나 교육 의료 등 사회인프라 관련 각종 프로젝트 지원,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경제협력 등을 패키지로 제공함으로써 일본 기업들의 협상력을 높여주고 있다. 일본의 주요 해외자원 프로젝트로는 2008년 12월에 있었던 미쓰이의 호주 우라늄광 지분 49% 확보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우라늄 광산 투자 합의,러시아 석탄광산 참여,남아프리카공화국 백금탐사 프로젝트 지분 인수 등이 있다.
◆턱없이 못미치는 자주개발률
에너지 소비량이 매년 세계 10위 안에 드는 한국 역시 지난해 고유가 상황에서 해외 자원 확보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식경제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5개 원유 및 가스 프로젝트와 71개 광물프로젝트에 신규로 참여해 유전 가스전에 약 40억달러,광산에 약 19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각각 58%와 180%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은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의 원유 · 가스 해외 의존도는 97%인데 자주개발률(수입 물량 중 자국 기업이 개발해 확보한 자원의 비율)은 5.7%(2008년 기준)에 불과한 현실이다. 외풍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해외의존도가 95%로 높은 편인 프랑스의 자주개발률이 97%(2006년 기준)이고,이탈리아(해외의존도 86%)가 48%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지난해 투자 수준을 2016년까지 가져가야 비로소 28%에 도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너도나도 자원 개발에 뛰어드는 상황이라면 투자비 자체가 상승해 이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 수석연구원은 "탐사 기술 등 자원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시기를 앞당기고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자원민족주의 경향에 대비해 대외원조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가는 전략적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