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국적으로 시 · 군 · 구간 통합 논의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는 자치단체간 자율통합 지원계획을 마련했고,국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방행정체계 개편 법률안을 심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치단체간 통합 논의는 고질적인 소(小)지역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선례를 남기고 학습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따라 생활권이 확대되면서 행정수요는 광역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화와 지방화 추세에 따라 도시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자치단체의 자원과 재정규모 등을 키워 지역경쟁력을 제고할 필요성도 있다.

그럼에도 자치단체간 통합이 어려운 까닭은,통합에 따른 편익은 다수의 주민이 나누어 공유하지만 그 피해는 자치단체장과 공무원 등 특정 대상에게 집중됨으로써 반대의 목소리만 결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합은 결국 지역주민 스스로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으며,이를 위해서는 먼저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통합의 실익이 구체적으로 적시돼야 한다.

동일한 생활권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택시요금에 할증료가 붙고,버스를 갈아타야 하며,상 · 하수도 요금을 더 많이 내야하는 불합리는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다. 번듯하게 지어놓은 시청사 세 개가 있으면 통합을 통해 한 개는 문화시설로,또 다른 한 개는 복지시설로 활용하는 것이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길이다.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 인프라 건설에 재정 투입의 여력이 있는 자치단체와 가용토지가 풍부한 자치단체가 합치면 기업을 유치하기가 훨씬 쉽고,이에 따른 고용창출과 세수증대의 효과를 공유할 수 있다. 특히 세계화에 따른 개방경제시대에 지역의 상품을 세계 각지에 수출하고 외국 기업과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인적자본과 기술력,교통 · 물류시설,토지 · 환경자원 등에 있어 각각의 장점을 갖고 있는 자치단체들이 서로의 힘을 합쳐야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시 · 군 · 구의 기초자치단체간 통합도 의미있는 일이지만,지역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광역시 · 도의 광역자치단체간 통합이다. 중심도시(광역시)가 없거나 배후지역(도)이 없는 지역경제권을 상상할 수 없듯이 광역시 · 도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형성해 왔으나,지방정치의 역학에 의해 인위적으로 나누어졌을 뿐이다. 이미 정부에서도 광역시 · 도를 묶은 광역경제권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광역자치단체의 규모를 키워 직접 중국,일본 등과 교역하고 외국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권한과 재원 등의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중앙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방행정체계 개편은 시 · 군 · 구의 기초자치단체간 통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더 나아가 광역시 · 도의 광역자치단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정치권의 의도대로라면 결국 중앙정부 밑에 60~70개의 자치단체가 매달려 있는 형국이 된다. 그렇지만 과연 60~70개의 자치단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을 가질 수 있을까? 과연 60~70개의 자치단체에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경쟁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원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극히 회의적이다.

자치단체간 통합이나 지방자치체계 개편에 따른 행정의 통합은 정치가 아닌 경제의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앞서 지역주민의 경제적 편익이 우선돼야 하며,세계화와 지방화에 따라 지방분권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ㆍ도시계획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