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자동차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한 간부가 최근 기자에게 한 말이다. "올 들어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30~40%의 판매 감소로 고전하고 있지만 현대차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약진하고 있다. 그 비결을 연구 중이다. " 전 세계 자동차 회사의 교과서였던 도요타가 후발 주자인 현대차를 역(逆) 벤치마킹하겠단다. 도요타의 위기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소니는 멕시코에 있는 LCD(액정표시장치) TV 조립공장을 대만 업체에 팔기로 했다고 지난 1일 발표했다. 이 공장은 미국 시장을 겨냥한 생산기지다. 미국 TV시장에서 삼성전자에 밀려 적자만 누적되자 두 손을 들고 철수하기로 한 것이다.

작년 가을 세계경제 위기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일본의 주요 기업들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적자 탈출이 어려울 전망이어서다.

2000년대 중반 미국 시장의 거품 속에서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던 일본 기업들인 만큼 상대적으로 불황의 골도 깊다. 고령층이 많은 인구 특성상 내수회복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더디다.

일본 기업들은 이런 위기를 다운사이징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 등 주력 시장이 줄어든 만큼 과감히 몸집을 줄인다는 전략이다. 도요타는 1000만대인 자동차 생산능력 중 10%인 100만대를 감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으로 운영해온 캘리포니아 공장(NUMMI)을 내년 3월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도요타가 공장 문을 닫기는 창사 72년 역사상 처음이다.

"올해 판매 전망은 668만대다. 그러니까 300만대 이상의 과잉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조업 단축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다. " 생산능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도요타뿐만 아니라 소니 캐논 후지쓰 등 전기 · 전자 회사들도 공장 폐쇄와 인원 감축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계속 진행 중이다.

일본 기업들의 또 하나 위기대처법은 인수 · 합병(M&A)이다. 휴대폰을 만들고 있는 NEC와 히타치 카시오 등 3사는 내년 4월까지 휴대폰 사업을 통합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들 회사가 사업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연구개발(R&D)에 대한 중복 비용을 절감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내수시장이 포화인 상태에서 수출도 여의치 않자 '생존을 위한 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최대 맥주회사인 기린과 3위인 산토리가 합병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나 일본 내 2,3위 반도체 회사인 르네사스와 NEC가 합병을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전히 구조조정에 분주하지만 일본 기업들이 절대 게을리하지 않는 게 미래 준비다. 세계 최강이라는 환경기술을 바탕으로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다른 것은 모두 줄여도 환경분야 등에 대한 R&D 투자는 오히려 늘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요 25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은 4.3%로 작년에 비해 0.3%포인트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율은 3년 연속 상승한 것으로 8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일본 기업들이 앞으로 집중하려는 R&D 분야는 환경과 에너지다. 복수 응답을 받은 결과 가장 많은 57.7%의 기업이 에너지 절약 기술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신에너지 기술(46.5%),신소재 개발(37.3%),나노 기술(32.7%) 순이었다. 도요타의 경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등 환경차에 대한 투자액을 크게 늘렸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은 4.9%로 작년보다 1.3%포인트나 올라갔다.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 기업은 주력시장이던 미국의 붕괴와 인구 감소에 따른 내수 침체로 더블펀치를 맞아 회복이 더디다"며 "그러나 R&D 투자를 계속 늘려 전기차 등 환경제품 시장에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회복을 시작하면 무섭게 치고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