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식 부산시장은 최근 새 별명을 얻었다.‘디지털 불도저.'

개발시대의 지도자상인 불도저와 문화ㆍ정보화 시대의 키워드인 디지털이 절묘하게 융합된 별칭이다. 부산이 딱 그런곳이다. 부산 국제 영화제와 첨단 항만 물류 시스템, 관광을 자랑하는 이면에 선진 도시를 향한 개발의 몸부림이 공존한다.

이런 도시를 경영해야 하는 허시장을 최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28년간 부산에서만 일했다는 그의 부산러브스토리를 들어보자.


▶요즘 부산의 경제사정은 어떻습니까.

“그동안 부산을 먹여 살릴만한 산업이 제대로 없어서 고생했죠. 제조업의 비중이 전체산업 가운데 20%대로 떨어졌으니까요. 하지만 최근 서부산권에 공장부지가 확보되면서 외지로 떠났던 제조공장들도 하나 둘 부산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화전산단 공장부지를 3.3㎡당 150만원에 분양했는데 다 팔렸습니다. 항만과 공항,철도를 갖춰 입지여건이 최고라는 거죠. 인근지역 땅값이 50만~60만원으로 싸지만 부산으로 옵니다.

1인당 지역내 총생산(GRDP)은 광역지자체 중 꼴찌 수준이지만 소비지출은 두번째로 커 인근지역을 거느리는 중심도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인근 지역간에 주요사업을 두고 갈등도 많은데.

“저와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개인적으로는 형님 동생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지역간 현안문제가 걸리면 부산시민과 경남도민의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해결이 쉽지 않죠. 신항명칭과 신공항 위치문제,먹는 물 문제가 대표적인 갈등사례입니다.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해소되리라고 봅니다.

신항 명칭도 신항으로 결정되고 나니 서로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습니까.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상생하지 않으면 둘 다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죠.”


▶부산의 최고 역점사업인 남부권 공항유치계획은 잘돼 가는가요.

“다른 지방 공항들이 적자난다고 남부권 공항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김해공항만이 유일하게 지역에서 흑자를 내고 있어요.

남부권 공항은 인천에 이어 제2의 관문인 김해공항 인근에 지어져야합니다. 항공 수요도 계속 늘고 있고요.

남부권 공항은 부산만이 아니라 남부지역이 모두 이용하는 곳입니다. 공항입지를 두고 5개 시ㆍ도의 갈등이 있습니다만 공항입지는 내륙에는 불가능합니다. 산이 있으면 안전에 치명적이고 날씨가 불순한것도 문제가 됩니다. 인천공항이 영종도에 간것도 같은 이유에서죠.

공항은 해상에 만들어야 합니다. 가덕도 해상에 남부권 허브공항을 만들어야 인근지역 주민들도 편하고, 안전도 보장될 수 있습니다."


▶항구도시 부산의 항만 경쟁력이 외국 경쟁항만에 갈수록 밀린다는데.

“정부는 정말 항만정책에서 신중해야 합니다. 부산과 광양 두 곳을 동시에 성장시키는 ‘투포트 시스템’이 실패했는데도 ‘다항만체제’로 가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세계 5위의 컨테이너 항만이라고는 하지만 자체물량이 늘지 않는데야 별 수 있습니까. 거기에다 국내 곳곳에 항만이 들어서면 물량이 더 줄어들 것입니다. 부산항은 과잉상태가 아닙니다. 중국을 비롯한 국제경기가 풀리면 최대 수혜지역 입니다.

허브(중심)항만은 더 키워 동북아의 물류 중심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허브항 기능을 잃게 되면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큰배들이 부산항에 오지않고 상하이 등 인근항으로가 화물을 풀어놓고 작은배로 부산항에 화물을 보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난개발로 부산의 도로와 주거 환경질이 떨어지죠.

“부산은 우회도로가 거의 없어 그동안 도로가 엉망이었죠.

특히 산이 많아 교통불편을 가중시켰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교통망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김해공항에서 해운대까지 차로 30분정도밖에 안 걸립니다.

거가대교~부산신항~명지대교~남항대교~북항대교~광안대교~경부고속 도로로 이어지는 해안순환 도로망이 2011년까지 완공되면 숨통이 확 트일 겁니다.”


▶도심의 산 주위 주택들이 미관을 해치고 있는데.


“옛날 도심지인 중구와 동구, 영도지역에는 미관을 해치는 낡은 주택들이 많습니다.

해방 이후 전국의 사람들이 부산에 몰려들면서 무계획적으로 판자촌이 형성 됐기 때문이죠. 기반시설도 만들고 공원도 조성해야 하는데 시에 돈이 없어 고민입니다.

국가차원에서 지원을 늘려줬으면 합니다. 앞으로 재건축을 통해 시카고의 건축 미관과 요코하마의 항만을 본뜬 멋진 고지대 항만도시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부산에 볼 만한 곳도 늘고 있습니다. 해운대 동백섬에서 센텀시티와 수영만 매립지를 잇는 곳은 세계 어느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건축의 질과 편리함에서 최고 수준의 항만도시를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부산 국제영화제는 국내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더 유명한것 같습니다.


“뉴질랜드, 홍콩, 일본에 가서도 부산 국제 영화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딱딱한 컨테이너 도시에서 영화의 도시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영화인들과 공무원, 시민들의 노력 덕택이죠. 지난해 영화 후반 작업 기지도 만들었고 영상센터도 조성 중입니다. 영화 제작 작업의 40%가 부산에서 이뤄진다고 보면 됩니다. 아시아 필름마켓에다 방송 콘텐츠 시장,국제 광고제도 함께 열면서 국제 영화중심 도시로 도약 중 입니다. ‘친구’ 나 ‘해운대’ 를 보십시오. 부산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 대박이 터지지 않습니까.”

▶2020년 하계올림픽의 유치 가능성은.

“국민 화합과 지역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1997년부터 낸 아이디어입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때 본격적으로 유치를 추진해 왔죠. 평창의 동계 올림픽 3수도전으로 2010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캐나다밴쿠버)가 결정 될때까지 유치 활동이 잠깐 주춤한 점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자신 있어요. 부산은 2002년 아시안 게임을 치른 경험도 있고 부산 인근인 울산과 대구,창원 등에 경기장이 많아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경제적인 올림픽을 열 수 있습니다. 영남권 5개시ㆍ도가 함께 치르기로 결의도 했어요.”


▶부산의 컨셉트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역동적이고도 다이내믹한 ‘남부권의 중심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인구는 적지만 김해와 양산 등 인근 800만명 동남권 권역인구의 중심도시로서의 역할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정부도 거점도시 중심의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지자체는 횡단보도선 하나 긋고 신호등 하나 조정할 권한도 없습니다. 부산시 특성에 맞는 국(局)조직 하나를 신설하는 것도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지방이 소외감 느끼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중앙 정부가 실질적인 권한과 재정을 지방으로 이전시켜 제대로 된 지방분권을 했으면 합니다. ”


▶어린시절 추억 좀 들려주시죠.

“고향의령은 저에게 원천적인 힘을 주는 곳입니다. 시골에서 소 풀먹이면서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다녔습니다. 저수지에서 통나무 타고 개헤엄 개구리 헤엄치면서 수영하고,새끼짚 말아 논에서 공처럼 차고 놀았습니다. 참외 서리도 하고 감자도 빼먹고…. 꿈같은 시절이었죠. 고향은 늘 사람들로 붐볐어요. 곽재우 장군,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의령 출신 이어서 이분들 생가에서 기를 받으러 온 방문객이 많았어요.

의령 출신 사람들은 체력이 좋다고 해요. 저도 체력 하나는 끝내줍니다(하하). 의령은 산골이라 살기가 어려웠어요. 초등학교에 들어 갔는데 교실이 없더군요. 3~4 학년때까지 책상이 없어 마루바닥에 페인트칠해서 공부했습니다. 한 학급 50여명 중 중학교에 간 친구가 10명도 채 안됐죠.

집과 학교가 4㎞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그야말로 산넘고 물건너 학교 다녔어요. 한번은 홍수가 나서 개울에 엄청나게 물이 불었는데 발을 잘못 디뎌 죽을뻔 한적도 있었습니다. 비오면 더 재미있었죠. 그땐 붕어 같은게 도랑을 따라 논으로 올라오곤 했어요. 귀신얘기와 문둥이가 왜 그렇게 많았던지. 밤중에 집으로 돌아오는 산길에는 으레 귀신이 튀어나온다는 괴담이 있었어요. 그땐 얼마나 겁나던지.”


▶공무원이 청년시절의 꿈이었습니까.

“대학 마치고 입대해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입학했어요. 2학년때 운좋게 행시에 합격해 공무원길에 들어섰습니다. 뒤돌아보면 정말 꿈을 향해 밤낮없이 공부했던 시절이었어요. 당시에는 행정대학원에 들어가면 절반 정도가 대학교수가 되거나 공무원이 됐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꿈이 ‘대도시 행정가’ 였습니다. 주저함없이 공무원의 길을 택했죠. 열심히, 정직하게 일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되기 전까지 28년 동안 부산에서만 공무원 생활을 했습니다. 시정은 보람이 있는 반면 답답한 측면도 있습니다.


시장은 원칙적으로 갑갑한 직업이라고 볼 수도 있죠. 쉼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즐기면서 하자라고 늘 제 자신에게 주문을 합니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덜 받죠. 요사이 공무원이 안정된 직장이라는 인식으로 젊은이들이 몰려 들고 있습니다만 충고 한마디를 하죠. 공무원은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사명감이 없으면 안됩니다.”

▶부인과는 중매로 만나셨나요.

“외사촌 형님의 소개로 만났죠. 첫눈에 마음에 들어 5~6개월 사귀다가 결혼했습니다. 취미가 일일 정도로 답답한 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뒷바라지를 잘해주지요. 처(이미자씨)는 미술을 전공해 예술적 감각이 있습니다. 어쩌다 ‘멋쟁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하는데 코디 역할을 해주는 아내 덕분이지요. 시장이 되고 나니 더 바빠져서 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통 안 생기네요. 저는 전형적으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입니다. 생일도 못 챙겨주고 애정표현도 잘 못해요. 요새 젊은부부 같으면 벌써 몇 번이나 쫓겨났겠죠.

아내를 부를때도 아들 이름을 따 ‘욱아’ 라고 부릅니다. 오늘 집에가면 아내 이름을 불러보겠습니다.”


▶ 시장출마 할때 집안에서 반대는 없었습니까.


“선거를 치르다 보면 말도 안되는 흑색 선전에 휩쓸리는 등 힘든 상황을 겪게 됩니다. 집사람이 모를리 없지요. 그래서 시장 출마를 한사코 말렸습니다. 안정된 공무원 생활만 하던 사람이 험난한 정치의 세계로 뛰어든 다는데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저의 의지와 각오를 듣곤 “당신 뜻대로 하세요” 라고 격려해주었어요. 아내는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저의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제가 근거 없는 인신공격에 시달릴때에도 저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인지 아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참 고마운 일이죠. 감사의 표현으로 아내 이름과 같은 가수 이미자씨의 ‘동백아가씨’를 자주 불러요. 이 정도면 애처가 아닙니까.”


▶자녀교육이 제일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평생 공직생활 하면서 큰 난관없이 잘 헤쳐 나왔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자식은 마음먹은대로 안 되더군요. 사고방식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자식들이 평범한 직장을 구했으면 하는 생각이었는데 우리 욱이(장남)는 그렇지 않았어요. 늘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좀 튀는 성격이죠. 중학교때 야구선수 하겠다고 했는데 말렸죠. 공부 잘 하기를 바라는 보통 부모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고 대학 들어가더니 배우가 되겠다는 겁니다. 야구문제가 마음에 걸려 “하고 싶은 것 한번 해봐라” 라고 말은 했지만 속으론
중도에 포기하기를 바랐죠. 그런데 저를 닮아서 인지 주위에서는 외모도 괜찮고 키도 커 평판이 좋더라고요. 그러더니 ‘태풍’, ‘똥개’ 같은 영화에도 출연했고 드라마에도 나왔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있습니까. ”


▶다른 직업을 갖고 싶지 않은지요.

“현재로선 시장만큼 잘 할 수 있는일은 없습니다. 3선에도 전해 그동안 진행해온 일들을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기업이라면 한번 운영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습니다. 기업이 잘 돼야 지방이 세계화시대에 주역으로 우뚝 서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국경이 없는 시대 아닙니까. 국가나 도시가 기업을 선택하는것이 아니라 기업이 국가나 도시를 선택하는 시대 입니다. 기

업은 냉정하죠. 애국심, 애향심에만 호소할 수 없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이 선택하지 않는 국가나 도시는 전망이 없습니다. 좋은 기업 만들어 부산을 살 찌우는데 기여한다면 보람있는 일이겠지요. 일자리도 창출하고 인재도 만들어내고…. 보람있는 일이지요. 세계 도시 부산을 만드는데도 기업인들의 역할이 절대 필요합니다.”


▶살아오면서 가장 자신있다고 자부하는것은.

“고시 패스후 사무관하면서 운이 좋았는지 일 가지고 남에게 뒤지지는 않았어요. 한번 일이 주어지면 밤낮없이 뛰어 다니면서 반드시 해결해야 직성이 풀렸죠. 일로 지기 싫어합니다. 일에 정력을 쏟아왔기 때문에 공직생활경험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행정 하나만은 자신 있습니다. 공무원들과 사람 평가는 기준이 아무리 바뀌어도 평가 결과는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알아보기 때문이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 재산 입니다.”

정리= 김태현/사진=정동헌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