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항상 넘치는 것보다 모자란 것이 낫다고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남들이 지적하는 단점을 고치려고 노력한 게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된 것 같아요. "

'리사이틀의 여왕' 하춘화씨(54 · 사진)는 26일 에세이집 《아버지의 선물》 출간 기념회에서 아버지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책은 가요 인생 50여년을 정리한 것이지만 대중가수를 폄하하던 시기에 자존심을 갖고 저를 키워주신 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자식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모들이 이 책을 통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철강선 제조업체 설립자였던 그의 아버지 하종오옹(89)은 둘째딸의 노래 솜씨에 놀라 음악학원에 직접 등록시켰고 지금도 딸의 기사를 스크랩하는 등 하춘화 음악 인생의 버팀목이다.

올해로 데뷔 48주년을 맞은 하씨는 1900여회 공연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한국 대중음악사의 산 증인'이다. 최연소(6세) 독집 앨범 발표,최연소(11세) 음반사 전속가수,최초 평양 공연(1985년),1971~1977년 연속 MBC 10대 가수상 수상,TBC 방송가요 대상 4회 수상 등의 기록을 비롯해 2500여곡 발표 등 그가 남긴 한국가요사의 발자취는 '전인미답'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2006년에는 성균관대에서 대중가요 역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데뷔 48주년을 맞아 낸 책이라면 제가 70세쯤 되는 줄 알고 다들 자서전을 생각하지만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했기 때문에 아직 자서전을 쓸 나이는 아니다"며 웃었다.

반세기 동안 꾸준히 국민의 사랑을 받은 덕에 그는 역대 대통령과도 두루 인연을 맺었다. 특히 박정희,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과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육영수 여사 서거 뒤 청와대 영빈관 공연에서 만난 박 전 대통령이 '너를 보면 애틋하다. 너도 아버지랑 잘 다닌다며? 나도 딸 근혜와 다닌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를 찾기도 했던 하씨는 "한 호텔에서 디너쇼를 할 때 정치권에서 물러난 김 전 대통령이 오셔서 '목포의 눈물'을 신청해 부른 적이 있다" 며 "그 인연으로 동교동 사저로 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140여장의 앨범 중 자신을 세상에 알린 '물새 한 마리'가 담긴 음반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다. 반면 초등학교 학예회장은 물론 세계 어디든 교포가 있는 곳이면 들을 수 있는 '잘했군 잘했어'가 수록된 음반을 가장 힘들게 녹음한 음반으로 꼽았다. 그는 "'잘했군 잘했어'를 녹음할 당시 제 나이가 열여섯 살이었고 듀엣으로 영감 역을 맡았던 가수가 아버지 뻘이어서 부르기 싫었다"며 "아버지는 진정한 예술가라면 이런 노래도 불러야 한다고 했지만 이 노래는 요즘에도 콘서트에서 거의 부르지 않는다"고 웃었다.

한편 책 발간에 맞춰 하춘화 소장품 전시회도 열린다. 30일까지 서울 홍익대 앞 더 갤러리에서 음반,트로피,기사 스크랩,팬들로부터 받은 선물,공연 사진 등이 전시된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