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생활용품 업체인 SC존슨은 '그린리스트(greenlist) 프로세스'라는 환경효율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수천여 종의 원 · 부자재를 분류하는 시스템이다. 모든 원 · 부자재는 4단계로 분류된다. 맨 아랫단계로 판정된 원 · 부자재는 퇴출된다.

SC존슨은 이를 통해 폐기물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포장폐기물도 25% 감축했다. 연간 2000만달러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도 거뒀다.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세계 10대 환경친화기업에 포함되기도 했다.

녹색성장시대를 살아가는 기업들에 그린 경영전략은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그린 경영이 무엇인지 몰라 고민하는 기업이 상당수다. 그저 환경친화적 활동을 강화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기업도 많다. 그린 경영은 방어적인 게 아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비용도 절감하고,수익도 늘리면서,대외적인 그린 이미지를 강화하는 작업이다. SC존슨처럼 말이다.

◆비용절감 · 수익 · 브랜드가치 감안을

그린 경영은 기업활동 전반을 친환경적으로 개편하는 것은 물론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 기반도 동시에 마련하는 걸 뜻한다. 그린 경영전략을 짤 때는 비용 절감과 수익 창출,브랜드 가치 제고라는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비용 절감은 그린 경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단기적 성과다. 생산공정 개선을 통해 오염과 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서다. 중앙연산처리장치(CPU) 생산업체인 AMD는 특정 공정에 들어가는 물 사용량을 1분에 18갤런에서 6갤런 미만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비타민음료 회사인 프로펠은 페트병 제조 과정을 개선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33% 절감했다. 이처럼 프로세스 개선은 비즈니스 초기 단계에서 원가 절감과 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다.

비용 절감이 그린 경영의 '수비적' 효과라면,수익 창출은 '공격적' 효과다. 친환경 경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존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방법으로 '에코 디자인'을 들 수 있다. 에코 디자인은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면서 제품의 기존 가치를 높이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생산 및 유통 모든 과정을 새롭게 다시 설계하는 것을 뜻한다. 조명기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LED(발광 다이오드)를 도입하거나 자동차의 주행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하이브리드카를 만들어 내는 식이다.

기업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도 그린 경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다.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발판이기도 하다. 오염 유발 가능성이 높은 화학업종의 한계를 선제적 대응으로 극복하며 친환경기업의 대명사로 떠오른 듀폰이나 녹색기술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앞세워 대표적인 그린 기업으로 자리잡은 GE 등이 대표적이다.

◆'그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린 경영에 성공하려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그린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전략을 수립할 때 몇 가지 실무적인 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라도 그린만을 내세워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이다. 고객이 어떤 제품을 사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 제품 본연의 기능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친환경적인 특성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이는 제품을 구매하는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고려 사항이 될 뿐이다. "이 엔진오일은 엔진을 보호하는 기능이 탁월한 데다 친환경적이다"는 식으로 본래 기능에 충실한 좋은 품질에 부수적으로 친환경적인 특성을 갖춰야 한다.

그린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가격 상승 효과를 기대하는 것도 금물이다. 비슷한 상품보다 값이 비싸면 소비자들은 외면하게 마련이다. 물론 최근 미국 언론들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값이 다소 비싸더라도 친환경적인 제품을 구입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5~20%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기업들이 실소비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는 반대였다. 실제로 더 비싼 가격에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내비친 소비자는 1% 안팎에 불과했다.

그린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비싼 값을 주고 그린제품을 사겠다는 소비자가 아직은 적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그린제품을 앞세워 성장전략을 짤 때는 가격보다는 시장점유율 확대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

그린 경영이 기업경영에서 차지하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인식한 뒤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으로 전략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델컴퓨터는 올해 초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량 '제로'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델 본사의 생산단계에 국한된 것이다. 협력업체와 소비자들이 각각 생산 및 소비 과정에서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물론 델 본사가 탄소배출량을 제로로 만든 걸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전 사업체계에서 동시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도록 그린 경영전략을 구사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시장을 이해하라

아무리 좋은 경영전략을 짜더라도 시장과 동떨어지면 의미가 없다. 아무리 좋은 그린제품을 만들었더라도 시장의 수요와 맞지 않으면 돈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린 경영전략과 그린제품 개발은 시장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 미국의 화학기업 몬산토는 '생명공학분야의 마이크로소프트'라 불릴 만큼 강자로 군림하고 있지만 뼈 아픈 과거가 있다. 이 회사는 1996년 병충해에 강한 유전자 변형 옥수수를 처음 개발했다. 당시만 해도 전 지구적인 식량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얼마 안돼 꺼졌다. 유럽시장에서 유전자 변형 곡물이 환경 및 인체에 유해하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불매운동과 정부 당국의 엄격한 규제로 재배 및 판매금지 조치를 받기까지 했다. 기술적 혁신에는 큰 성과를 거뒀지만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다.

그린 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한 듀폰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90년대 폴리에스터사업에 친환경적 혁신을 도입하고자 했다. 폐(廢) 폴리에스터 제품을 화학처리해 원료를 회수한 뒤 여기서 다시 폴리에스터를 생산하는 재활용기술을 사업화한다는 구상이었다. 폴리에스터를 폐기하려는 고객의 수고를 덜어주고 원료값을 아끼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당시 폴리에스터 폐기는 고객에게 큰 이슈가 아니었다. 화학처리 비용을 감안하면 원료값 절감 효과도 적었다. 아무리 뛰어난 혁신이라도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없다.

김동욱 기자/김상열 딜로이트컨설팅 상무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