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일본 기업들보다 훨씬 무서운 경쟁자다. "(삼성전자 A사장) "삼성은 역시 삼성이다. 아직은 힘겨운 상대다. "(LG그룹 B부품사 사장)

올 상반기 세계 전자시장의 주역은 단연코 한국의 삼성과 LG였다. 문자 그대로 종횡무진이었다. 휴대폰의 노키아,TV의 소니와 마쓰시타,디스플레이의 샤프,백색가전의 월풀이 죽을 쑤고 있는 동안 파죽지세로 시장을 점령해 들어갔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원투펀치'의 고지에 올라선 두 그룹은 이제야 서로를 괄목상대하고 있다. 눈을 먼저 씻고 긴장감을 내비치는 쪽은 삼성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LG는 백색가전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LG전자의 휴대폰사업이 모토로라를 압도하고 TV 사업은 소니를 제쳐버릴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면서 삼성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LCD(액정표시장치) 사업에서 세계 1위 자리를 다투고 있는 LG디스플레이의 권영수 사장에 대해선 "LG에도 저렇게 저돌적인 인물이 있었나"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올해 LG마이크론과 합병을 거쳐 탄생한 LG이노텍은 또 어떤가. 삼성전기와 견줄 수 있는 걸출한 부품사가 LG에도 생겨난 것이다. 삼성 내부에서 "비록 추격자이긴 하지만 우리도 LG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LG는 그들대로 삼성의 탁월한 경영역량과 집요한 승부근성을 부러워한다. LG화학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제휴로 한발 앞서나가던 하이브리드 배터리시장에 삼성SDI가 필사적으로 따라붙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과 올 상반기 실적을 꼼꼼하게 비교해 본 LG의 한 임원은 "TV 휴대폰 분야에서 진검승부를 겨루고 있는 지금에서야 삼성의 저력을 새삼 실감한다"며 "비록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을 떠났더라도 최지성 박종우 윤부근 사장 같은 인물들이 두터운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두렵다"고 말한다.

최고조에 달한 양대 그룹의 경쟁의식이 하늘로 치솟든 말든 국민들로서는 이런 양상이 반갑기만 하다. 좁은 내수시장이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한국의 '파이'를 더 키워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GM과 포드를 앞세워 100년 동안 자동차 왕국으로 군림했다. 도시바와 NEC는 1980년대 일본 반도체업계 부동의 투톱이었다. 하지만 '원투 펀치' 중 하나가 무너지면 아무리 잘 나가는 팀도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게 승부의 세계다.

1970년대 이후 20여년간 세계 조선시장을 석권한 일본의 퇴조는 세계 1위였던 미쓰비시의 쇠락으로 시작됐다. 유럽 전자업계의 원투펀치였던 독일 지멘스와 네덜란드 필립스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유럽시장의 패권을 한국과 일본에 내주었다.

이제 LG와 삼성은 불필요한 자존심 싸움을 접을 때가 됐다. 제 살 깎아먹는 식의 출혈경쟁은 더욱 곤란하다. 시장은 아직 넓고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요즘 양대 그룹 경영자들이 스스럼없이 인정하는 것처럼 서로 상대의 장점을 배우고 수용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모방하고 복제하는 시대는 피차간에 끝났다고 봐야 한다. 마침,삼성과 LG는 처음으로 LCD 교차구매를 결정했다. LED TV 생산방식도 상대방 것을 서로 받아들이고 있다. '코리안 원투펀치'의 롱런을 위해 바람직스런 일이다.

조일훈 산업부 차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