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산하 운수노조 소속 울산 · 부산 예인선지회의 동시 파업 돌입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민주노총에 소속돼 있지 않은 울산항 예인선 근로자 137명 중 115명과 부산항 예인선 근로자 172명 중 68명이 임금인상 등 권리를 향상시켜 주겠다는 운수노조 설득에 끌려 대거 가입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파업이 7일 현실로 나타나자 예인선을 운영하는 일부 선사들은 "민주노총은 안 된다. 그럴바에는 아예 직장을 폐쇄하겠다"고 나서 사태가 자칫 장기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울산항 한때 마비…물류 차질

울산항 예인선 선원 노조는 7일 오전 5시부터 울산항 8개 부두와 SK에너지,에쓰오일 부두 등에서 배를 선석에 대거나 끌어내는 업무를 전면 중단했다. 이에 따라 울산항 앞바다의 E-1, E-2, M-8 등 11개 정박지에서 예인선의 도움을 받으려던 유조선 등 17척의 중 · 대형 선박의 발이 묶였다. 같은 항에서 수출 화물을 싣고 중국 등 다른 지역으로 떠날 화물선 등 6척도 예정보다 2시간가량 늦게 출발해야 했다.

울산항만청 관계자는 "이날 하루 31척이 울산항 8개 두부에서 화물을 싣거나 내릴 예정이었으나 예인선 부족으로 오전 내내 차질을 빚었다"고 전했다.

울산항만청은 피해가 확산될 것을 우려해 긴급히 마산 포항 등 인근 항만의 예인선 7척을 울산으로 이동시켰다. 항만청은 파업 이틀째인 8일 인천 평택 목포 군산 등 8개 지역 항만에 있는 예인선 10척을 더 끌어와야 물류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오전 9시10분부터 예인선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부산항도 초긴장 상태다. 부산항 예인선 노조의 조직률이 39.5%로 울산항의 83.9%보다 낮은 게 다행이지만 이미 연계투쟁에 들어가 물류업체들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부산항에는 현재 32척(137명)의 예인선이 운항 중이며 이 중 16척(67명)이 민주노총 소속이다.

◆왜 파업했나

예인선 근로자들은 원래 노조를 결성하지 않은 채 대형 선박을 부두에 붙이고(접안),떨어뜨려 주는(이안) 일을 도와왔다. 노조를 결성한 부산 · 울산 예인선 지회는 민주노총 가입 직후인 지난 6월부터 예인선을 운영하는 8개 회사 측에 공동 교섭을 요구했다. 이들은 노조전임자 인정,노조사무실 마련,특별상여금 지급,근로기준법 적용 등을 주요 쟁점으로 내세웠다.

8개 회사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이끄는 노조를 인정할 경우 항만 전체가 파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고 본 것.양측은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조정을 거치긴 했으나 이견만 확인한 채 파업국면에 들어갔다. 예인선 운영회사의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공통 인식이 있었다"면서 "무엇보다 특별상여금 명목으로 매월 50만원을 올려 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양측은 근로기준법과 선원법 적용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노조는 근기법 적용을, 회사 측은 선원법 적용을 각각 주장했다. 근기법에 따르면 예인선 근로자들은 연장근로를 12시간까지만 할 수 있다. 반면 선원법에는 근기법보다 많은 16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노조 측은 또 선박 위기 때나 구조발생 때 쟁의행위를 제한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선원법보다 이 같은 제한이 없는 근기법을 선호하기도 했다. 노조측은 "선원법을 적용하려는 법개정 시도에 대한 반발이 이번 파업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선장의 노조가입은 불법

예인선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선사들은 직장폐쇄로 맞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파업에 반대하는 예인선 선사들의 조합인 예선업협동조합 울산지부는 이날 "파업 중인 선원 110여명이 속한 3개 회사가 직장폐쇄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장폐쇄 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다음 주 중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선장이 예인선 노조로 가입돼 있는 데 대해서도 선사들은 발끈하고 있다. 노동부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선장의 노조가입은 불법이다. 이번 파업이 명백한 불법파업이라는 주장이다.

해운항만청은 민주노총 소속인 마산항과 여수항의 움직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인 이들 항만의 예인선 근로자들이 동조파업에 나설 경우 남부권 항만이 일순간에 마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산항 관계자는 "예인선 노사가 한치 양보도 없이 대립하고 있어 장기파업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항만당국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고 예인선 노사도 국익 차원에서 협상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김태현/울산=하인식기자 hyun@hankyung.com

◆예인선(Tug Boat)=1000t이상 중ㆍ대형 선박을 부두로 끌고 오거나 바다로 끌고 나가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배다. 중ㆍ대형 선박은 자체 동력으로 앞뒤로는 움직일 수 있지만,부두에 선박을 붙일(접안) 때 필요한 좌우 이동은 불가능해 접안 및 이안(선박이 부두에서 벗어나는 것) 때는 예인선의 도움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