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쌍용차 사태를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도장 공장을 불법 점거한 노조원들이 벌이고 있는 투쟁은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한다. 해고의 위기에 내몰린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화염병을 던지고,볼트 새총을 쏴대고,불까지 지르는 모습은 근로자들의 정당한 파업 투쟁과는 거리가 멀다.

왜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하는지,법정관리 상태인 회사를 더 망가뜨려 무엇을 얻자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600여명의 해고를 막기 위해서라면 협력업체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고,남은 임직원들까지 함께 일자리를 잃는 사태가 와도 괜찮다는 것인지 당혹스럽기조차 하다.

여론도 최악이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러하고,인터넷 댓글을 뒤져봐도 마찬가지다. 회사와 협력업체,그리고 지역경제를 볼모로 한 극한투쟁에 대해 '폭도와 다를 바 없다'며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도 숱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폭력 투쟁을 계속한다면 엄격한 법 집행이 불가피할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공적 자금 투입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 것 또한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도 노조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사태는 노동계,특히 민노총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을 더욱 악화시키는 역할을 할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근로조건과는 관계없는 정치 투쟁,집단이기주의 등의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기반 약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게 바로 민노총이고 보면 위기의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 산하 노조들의 민노총 이탈은 최근 러시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들어 탈퇴한 곳만도 KT 인천지하철 등 10여개에 달하고,서울메트로 등 탈퇴를 추진 중인 곳들도 있다. 특히 지난달 조합원투표를 실시한 KT노조의 경우는 탈퇴찬성률이 무려 95%에 이르러 민노총의 노선이 일반 조합원 정서와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냈다.

민노총을 탈퇴한 노조들은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독자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게 두드러진 특징이다.

양 단체 모두 일선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탓이다. 이들은 정치투쟁과 무리한 파업을 자제하면서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향상에 매진하는 실용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그 효과 또한 상당하다.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독립노조 기업의 임금인상률(5.2~6.8%)은 한노총(3.9~4.5%) · 민노총(4.5~4.7%) 소속 기업들의 그것을 크게 웃돈다. 실속을 톡톡히 챙기고 있는 셈이다.

물론 노동계 전체로 보면 이런 추세가 바람직하다고만은 보기 어렵다.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서는 전체 노동계가 힘을 합쳐 공동전선을 펴야 할 때도 없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 차원에서 독립노조들이 독자세력화하면서 제3의 노총을 결성할지 여부는 큰 관심사다. 독립노조 조합원은 1999년에만 해도 2만7000명에 그쳤으나 지금은 30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차지하는 비율도 20%에 달해 그런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예정대로 내년부터 복수노조가 도입된다면 제3의 노총 결성은 한층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6개 지하철 노조가 추진 중인 전국지하철노동조합연맹(가칭) 등이 주목을 모으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어쨌든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노동계 내부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요구가 노동 운동의 합리성 · 도덕성을 재정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양대 노총 등은 현행 노동운동의 온갖 문제점을 축약하고 있는 쌍용차 사태를 거울 삼아 어떻게 하는 것이 일선 노조와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겠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