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중인 미국 국적 여기자 2명의 석방 교섭을 위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외교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지 주목된다.

오바마 정부는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의 일방적 외교에서 탈피, `스마트 파워'와 `리셋 외교'로 대표되는 유연한 외교기조를 채택해 왔다.

이란, 쿠바, 러시아와의 외교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지만 유독 북한 문제만큼은 북측의 대화 거부 입장으로 돌파구를 찾지 못해 왔다.

이 때문에 당초 예상과는 달리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지난 6개월여간 공식 회담 한 번 없을 정도로 북미관계는 냉각돼 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일단 오바마 정부는 북미관계에 있어서 분위기 전환의 주요 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전쟁위기까지 고조되던 1994년 1차 북핵위기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만큼 이번에도 성과가 예상된다는 관측이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위상을 고려할 때 단순히 여기자 2명의 석방 뿐만 아니라 난항을 겪고 있는 북핵문제를 포함한 북미관계 전반에서 새로운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하는 만큼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클린턴-김정일 담판을 통해 북핵 해결의 큰 물줄기를 마련하고, 북미 후속협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가 민간인 신분의 클린턴 전 대통령을 활용한 `특사 외교'에 나서면서 6자회담을 거부하고 핵 추가개발에 나서고 있는 북한을 일단 대화의 틀 내로 복귀시킬 분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섣불리 낙관할 수 없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특히 클린턴 전 대통령을 특사로 파견한 것을 오바마 정부의 전반적인 대북접근의 변화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여기자 문제는 인도적 문제로 북핵 문제와는 별개라는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현직 관리를 석방 특사로 북한에 파견하는 것도 계속 주저해 왔다.

북한이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성 김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의 방북을 초청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최근 나왔지만,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은 "보즈워스 대표와 성 김 수석 대표의 북측과의 만남은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워싱턴 소식통은 "오바마 정부가 북핵문제와는 별도로 여기자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담을 느껴 온 것 같다"고 이번 특사 파견의 배경을 분석했다.

북미 직접대화를 요구하는 북한에 대해 `6자회담 틀 내의 북미대화' 입장을 고수하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 역시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분위기다.

미 국무부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도발행위들을 그만둔다면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민간인 신분이기는 하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기회를 통해 오바마 정부가 김정일을 포함한 북한 지도부의 의도를 직접 탐색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는 점에서 이번 방북의 의미는 크다.

또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번 방북길에 오르기까지 국무장관인 부인 힐러리 클린턴 장관과의 깊은 협의는 물론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고위 인사들과의 직.간접 협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오바마 정부가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북한에 전달할 메시지의 내용도 관심을 끌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황재훈 특파원 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