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 대장의 추락 소식을 듣는 순간 숨이 막혔습니다. 불과 8시간 전 정상에 오르던 고 대장에게 잘 다녀오라고 격려했는데…."

'여성 산악인 최초 히말라야 14좌(해발 8000m 이상) 완등'이란 타이틀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였던 고미영씨(41)가 하산 도중 추락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은선씨(43 · 사진)는 "믿기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오씨의 후원사인 블랙야크가 13일 전했다.

오씨는 10일 오후 1시47분(이하 파키스탄 현지시간)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 정상(8126m)을 밟았으며 고씨는 5시간24분 뒤인 오후 7시11분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 도중 사고를 당했다. 오씨가 마지막으로 고씨를 만난 것은 정상을 무산소로 등정한 후 캠프4로 내려오는 도중이었다. 고씨는 "정상 등정을 축하한다. 조심해 하산하기 바란다"며 오씨에게 인사를 건넸고 오씨도 "조심히 올라갔다 와라.베이스캠프에서 꼭 보자"며 서로 격려했다. 하지만 고씨는 하산하던 중 11일 오후 7시40분께 '칼날 능선'으로 불리는 해발 6200m 지점에서 발을 헛디뎌 1500~2000m나 되는 협곡 밑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두 산악인은 이번 등정을 앞두고 베이스캠프에 머물면서 낭가파르바트를 오르는 길을 함께 상의하고 날씨 얘기도 나누던 선의의 경쟁자였다. 이번에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오른 오씨는 히말라야 14좌 중 12개봉,고씨는 11개봉 등정에 성공해 여성 산악인 최초 세계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각각 2,3개만 남겨 둔 상황이었다.

오씨는 사고가 없었다면 곧바로 가셔브룸 1봉(8068m)으로 이동해 13좌 등정에 도전할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이후 일정을 모두 뒤로 미룬 채 구조 작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고씨의 사고로 올 가을 두 사람이 손잡고 함께 여성 산악인 최초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기로 한 약속도 영원히 지킬 수 없게 됐다. 둘은 올해 안에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목표로 등정 계획을 세웠고 공교롭게 안나푸르나(8091m)가 둘의 마지막 고지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여성 산악인은 안나푸르나가 있는 네팔의 우기가 끝나는 가을에 함께 오르기로 지난해 초 약속했다. 국내 여성 산악인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에 오른 지현옥씨가 1999년 안나푸르나를 오르다 실종된 지 10년째인 올해 둘이 함께 안나푸르나에 올라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취지였다.

오씨는 국내 등산계에서 '철녀'로 불린다. 지난달 6일에는 칸첸중가(8586m),21일에는 다울라기리(8167m)를 잇따라 등정했다. 이번 낭가파르바트 정복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까지 가셔브롬 1봉과 안나푸르나 두 개만 남겨둔 상태다. 여성 최초 14좌 완등의 경쟁 상대로는 현재까지 12개봉을 등정한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과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 등이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