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치를 알아 어떤 일에 쉽게 혹하지 않는다는 불혹.그 나이가 된 지도 꽤 지났다. 그런데 사십대 초 · 중반에는 스스로에게서 불혹다운 면모는 거의 느낄 수 없더니,중반을 넘어서부터는 적어도 자신이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 중 일부는 속내가 조금씩 단순해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쓸 때 어떤 자질을 가장 중요시할 것인가의 문제라면,예전에는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전문성이란 점이 중요하다'든가,'우리 사회에서는 인적 네트워킹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이력과 학연,지연도 간과할 수 없다'는 식의 기준들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주변 사람들까지도 덩달아 불태울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중용할 수 있다'로 단순해졌다.

사실 단순화라는 것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경험하고 절실히 느껴 그 결론이 단순해진 사람과 아직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 있는 사람의 간격을 말로 좁혀 주기는 어렵다. 답은 쉽게 보여지는데,그 답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바보와 천재는 종이 한장 차이'란 말에 대해 내 딴에는 아는 척하면서 친구들에게 하고 다녔던 얘기가 생각난다. "이 세상을 사는 우리를 지배하는 논리의 대부분은 흔히 우리가 상투적이고 뻔하다고 얘기하는 옳은 소리나 진리 같은 것들인데,바보는 아무 생각없이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처음부터 그대로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이고,천재는 제 나름대로 아닐 수 있다고 반대 논리를 내세우며 버텨보다가 결국은 스스로 느껴서 받아들인다. 결국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결과는 같지만,자기가 느껴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고 없고의 종이 한장 차이가 그만큼 엄청나다. " 물론 반론의 여지가 많은 주장이었지만,나름대로 프로세스의 중요성만큼은 제대로 직시한 얘기가 아니었나 한다.

이런 의미에서 불혹이란,말콤 글래드웰이 쓴 '아웃라이어'에서 말하는 1만 시간의 훈련이란 프로세스를 거치고 '블링크'에서 말한 순간적 직관 능력이 생기는 시기를 얘기하나 보다 싶은 생각도 든다. 소위 말하는 통찰력 같은 것처럼.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평균 수명도 길어지고 복잡성도 더해진 이 세상이 기껏 사십줄까지 배운 지혜로 충분할 만큼 그렇게 만만한가. 세상의 이치를 조금 알게 돼서 쉽게 혹하지 않는 것까지는 좋은데,지금의 이 단순해짐에 대한 자신감이 해를 거듭하면서 독선으로 이어진다면? 나이 들면서 독선으로 치달으면 말려줄 사람도 없다는데….

여기서 또다시 그 뻔한 진리란 것이 고개를 들고 올라온다. 그 진리의 이름은 겸손이다. 이래 저래 불혹의 나이에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박종욱 < 로얄&컴퍼니(옛 로얄TOTO) 대표 · jwpark@iroyal.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