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들이 노동조합에 휘둘린 것은 기관장들이 노조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불합리한 관행과 이면계약을 방치한 데 따른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공공기관의 경영효율성을 악화시킨 요인입니다. "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 중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노사관계 부문을 맡았던 박영범 한성대 교수(경제학)와 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지난 19일 한국경제신문 14층 회의실에서 가진 좌담회에서 이같이 입을 모았다. 민간기업보다 강력한 노조의 기득권,정부 기준보다 많은 노조전임자 수,과도한 경영권 침해 등이 2개월여 동안의 경영평가과정에서 확인된 문제점들이었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사회=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했는데.

▲박영범 교수=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이행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조에 특혜를 주거나 원칙없이 노조에 끌려다니는 기관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공기관들의 단협을 보면 불합리한 교섭안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모습이었다.

▲김동원 교수=눈에 띄게 개선된 곳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노조의 기득권이 민간기업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편이었다. 아버지가 사망하면 자식을 취업시켜 준다는 식의 불합리한 조항이 많다. 노조만의 책임이 아니다. 기관장이 소신을 내세우기보다는 무난하게 임기를 마치려는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

▲사회=불합리한 관행의 사례는.

▲박 교수=상당수 공공기관의 전임자 수가 정부가 정한 기준보다 많았다. 전임자 수의 기준을 정한 것이 1995년인데 14년이 되도록 안 고쳐졌다는 얘기다. 인사평가 때 전임자라는 이유로 높은 평점을 주는 곳까지 있다. 일부 공공기관의 인사관여는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선진국의 공기업들은 어떤가.



▲박 교수='낙하산'은 한국에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외국의 경우도 외부 출신이 많다. 전문성과 역량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노조의 반발이 심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능력보다 정치적 역학 관계가 중시된다.

▲김 교수=사실 외국도 외부인사를 선호한다. 내부 사람이 기관장을 맡게 되면 개혁이 어려울 수 있다. 이철 전 철도공사 사장은 내부인사도 아니고 전문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못 받았지만 개혁의지를 가지고 원칙을 지켜낸 사례로 꼽힌다. 외국은 공공기관장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인사권만 있을 뿐 예산권 등은 없다.

▲박 교수=자율성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친 자율성으로 인해 방만경영이 이뤄지는 경우도 경계해야 한다. 모 국책은행의 초봉이 6000만원을 웃돈다. '주인 없는 회사'라는 인식 때문에 이면합의를 하게 되고 '이익이 많이 나니 월급도 많이 준다'는 안일한 인식을 갖게 된다. 문제는 몇몇 공기업 때문에 전체 공기업의 임금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김 교수=미국 하와이주에는 선샤인 법안(Sunshine Act)이 있다. 공공기관 노사협상에 납세자그룹이 참여하는 것이다. 그동안 밀실에서 이뤄지던 공공기관 노사협상을 양지(sunshine)로 끌어내자는 취지다. 한국 역시 납세자들이 노사협상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구조를 고려해야 한다.

▲사회=이번 평가에서 점수가 좋지 않은 기관들의 특징은.

▲박 교수=인사 방침에 일관성이 없고 기관장의 리더십도 떨어진 곳들이다. 경영권에 대한 노조의 간섭도 심했다. 이런 기업들이 겉으론 노사관계가 좋아보일 수 있다. 신노사문화대상을 받은 곳도 있다.

▲김 교수=노사관계에 문제가 있는 기업은 두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노조와 대립각만 세우고 커뮤니케이션을 아예 포기한 이른바 '노사갈등형'이 있다. 이번 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은 공기업이 대표적이다.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못한 상태에서 기관장을 맡다보니 조직장악력이 떨어지고 노조와 임기 내내 싸움을 벌였다. 또 노조와 영합한 기관장들도 있다. 제대로 된 노무관리 없이 '좋은 게 좋다 '는 안일한 인식을 갖고 있는 타입이다.

▲사회=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이면합의가 많다. 이번 평가에서도 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김 교수=공공기관의 이면합의는 심각한 수준이다. '노조가 순순히 양보했다'고 판단되는 사안들을 조사해보면 대부분의 기관장이 물밑에서 노조에 갖가지 특혜를 안겨준 것으로 드러난다. 이런 사실은 파악하기 힘들다. 감사원의 심도있는 조사나 내부고발이 있기 전에는 찾아내기 힘들다.

▲사회=한국조폐공사,국민건강보험공단 등 한때 노사갈등을 겪었던 곳이 좋은 결과를 냈다.

▲박 교수=워낙 홍역을 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수자원공사도 노조가 40여일간 장기집회에 나서는 등 갈등이 불거져 노사관계를 개혁할 수 있었다. 잘못된 관행이 원칙적인 대응에 따라 고쳐진 케이스다.

▲사회=공공기관장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김 교수=노사관계는 원만해야 한다. 하지만 영합하고 뒷돈 줘가면서 원만해서는 안 된다. 노조위원장과 밥 먹고,술 한잔 하면 되는 걸로 안다. 이를 넘어 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기업은행과 도로공사의 경우 CEO들이 연간 100차례 넘게 현장방문을 했다. 소통하는 노력이 있어야 노사관계를 풀 수 있다.

▲박 교수=기관장의 책임의식과 소명의식이 중요하다. 또 노조위원장,노조간부에 집중하지 말고 일반 직원으로까지 확대해 비전과 선진화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한다. 올해는 공기업 임단협이 많다. 적극적인 개선에 나선다면 공공기관 노사관계를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정리=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