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1조5000억 달러 자산규모의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 계열 자산운용사인 ‘바클레이즈 글로벌 인베스터스(BGI)’를 인수했다.자산운용업계에선 보기 드문 ‘메가 딜’ 성사로 블랙록은 자산 규모가 2조 8000억 달러인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로 발돋움하게 됐다.월가에서는 금융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파죽지세로 몸집을 불리고 있는 블랙록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블랙록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담보 증권 전문가인 로렌스 핑크가 1988년 설립했다.처음 관리하던 자산 규모는 10억 달러에 불과했다.채권투자가 전문이었다.블랙록 최고경영자(CEO)인 로렌스 핑크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인수·합병(M&A)를 통해 몸집을 불리고 투자상품 라인업을 구축하면서부터이다.

2005년 스트이트 스트리트 리서치 앤 매니지먼트를 소유한 SSRM홀딩스를 인수한 데 이어 2006년 메릴린치인베스트먼트매니저스(펀드사업 부문)와 합병을 단행했다.메릴린치와 합병으로 뮤추얼 펀드와 주식 관련 펀드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 영업기반을 구축했다.2007년에는 성격이 다른 여러 펀드에 분산 투자하는 펀드 오프 펀드(fund-of-fund)투자 전문회사인 퀄로스 그룹를 인수,다양한 펀드군을 거느리게 됐다.

M&A가 진행될 때마다 자산운용업계의 특성상 리스크가 적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흘러나왔다.기업 문화가 다른 운용사의 펀드 매니저간 화합이 어려운데다 규모가 크면 성장성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었다.

하지만 핑크 CEO는 계산된 접근법으로 딜을 추진했다.모닝스터의 마이클 헙스트 뮤추얼 펀드 애널리스트는 “블랙록은 메릴린치 딜로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분석했다.메릴린치 펀드 투자자들은 블랙록의 기업 분석 능력과 리스크 관리 능력을 통해 자산을 더욱 효율적으로 운용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블랙록이 신용경색에 따른 금융위기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것도 다양한 펀드 상품군을 갖춘 상태에서 리스크 관리 위주로 자산을 운용한 덕분이었다.블랙록이 인수하는 BGI는 상장지수펀드(ETF) 및 인덱스 펀드부문에서 장점을 갖고 있어 그동안 연금펀드나 기금 등을 주 고객으로 했던 블랙록이 개인 투자자들까지 고객층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BGI는 경쟁력있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을 확보하고 있다.자본시장이 정상을 되찾아 헤지펀드 영업이 활성화되면 블랙록의 수익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월가는 보고 있다.

핑크 CEO는 그동안 줄곧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고 투자자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M&A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밝혀왔다.그는 “금융위기로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금융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소형 자산운용사들은 규제 대응 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핑크 CEO는 블랙록이 금융위기가 터진 뒤, 정부의 구제금융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자문 역할을 맡으면서 더욱 명성을 떨쳤다.블랙록은 베어스턴스,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씨티그룹 등의 구제금융 과정에서 자산 관리 등을 자문했다.가격을 산정하기 어려운 자산의 가치를 따지는 것도 블랙록이 도맡다시피했다.자회사인 블랙록 솔루션은 복잡한 파생상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독보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금융위기로 인해 더욱 빛을 본 블랙록이 BGI 인수로 자산 운용시장에 어떤 바람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