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치러진 이란 대선에서 강경보수파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중동 평화에 먹구름이 한층 더 짙어지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화해의 중동정책'도 일단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예상 뛰어넘는 아흐마디네자드 압승

아흐마디네자드 현 대통령(53)은 62.6%의 득표율로,33.8%를 얻는데 그친 개혁파 미르 호세인 무사비 후보(67)에 압승했다. 독자적인 핵 개발 계획으로 미국 등 서방과 각을 세웠던 아흐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에 맞서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으로 예상됐던 친미성향의 개혁파 무사비 후보는 예상밖으로 득표율이 저조했다.

서구 주요 언론들은 아흐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도시지역에선 열세였지만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지지를 받은 데다 보수표의 결집이 이뤄지고,전통적 지지지역인 농촌과 소도시에서 투표율이 높아 대통령에 압도적으로 당선된 것으로 분석했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13일 대국민 TV연설에서 "이번 승리는 '신의 축복'"이라고 주장했다.

◆"오바마 중동 평화정책 암초 만났다"

강경 보수파인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에 대해 국제사회는 대체로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13일 즉시 성명을 발표하고 "아흐마디네자드가 승리함에 따라 국제사회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비타협적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며 강경 대응을 촉구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이란 대선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계속하겠다는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다. 로버트 기브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부정선거에 관한 보도를 포함해 전체적인 상황을 계속 면밀히 관찰할 것"이라고 견제했다. 이란과 유대관계가 있는 중국 독일 등과 인근 아랍권 국가들은 중립적 입장을 취했다.

주요 외신들은 오바마 미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 중이던 중동평화정책이 암초를 만나게 됐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슬람권과의 화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간 평화를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했지만 아랍의 맹주격인 이란에 대서방 강경파가 계속 득세함으로써 역시 강경파가 집권한 이스라엘과의 마찰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동전문가 플린트 레버렛은 독일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미사여구' 외교정책은 시간낭비가 됐다"며 "이제 미국은 명확한 요구사항을 협상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14일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란의 핵 정책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재선 후에도 기존의 독자적 핵무기 개발 정책을 고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30년간 지속돼 온 미국과 이란 간 반목과 갈등이 소폭 개선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평론가 마샬라 삼솔바에진은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이란은 미국이 중동지역 안정을 위해 이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활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정선거 시위 시가전 양상"

대선결과가 발표되자 마자 수도 테헤란 시내에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최대 규모인 3000여명 이상의 무사비 후보 지지자가 "선거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항의 시위도중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AP통신은 "곳곳에서 돌이 던져지고 화재가 발생하는 등 사실상 시가전 양상이 됐다"고 전했다.

무사비 후보도 성명을 통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불복 의사를 밝혀 앞으로 상당한 선거 후유증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무사비 후보는 "명백한 선거법 위반 행위에 강력히 항의한다"면서 자신의 강세지역 투표소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용지가 없어 투표를 하지 못했고 개표소에서는 참관인의 입장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동욱/서기열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