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C.W.체람 지음 | 김해생 옮김 | 21세기북스 | 616쪽 | 3만원

위대한 고고학 발견은 우리에게 한없는 상상력과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런 업적이 전문 학자보다 비전문가인 아마추어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더 이상 발굴할 것이 없다던 룩소르 왕가의 계곡에서 이집트 소년왕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하워드 카터는 무덤벽화를 모사하던 수채화가였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해독한 조지 스미스는 지폐인쇄공이었고,고대 마야제국을 발견한 존 로이드 스티븐스는 법률가 출신이었다.

트로이를 신화에서 끄집어낸 하인리히 슐리만 역시 고고학과는 거리가 먼 상인이었다. 그는 어릴 적 남들이 다 문학으로 치부하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트로이-아테네의 전쟁기록으로 보고 그 내용을 모두 사실로 믿었다. 《일리아스》에 '두 개의 샘에 도달했다'고 씌어 있으면 거기에 두 개의 샘만 있는 것이고,'급히 달려갔다'는 기록에서는 달려갈 정도로 그만큼 가팔라야 한다고 믿었다.

이처럼 호메로스의 기록을 천착한 슐리만은 마침내 트로이의 유적을 발굴해냈다. 슐리만은 그러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학계의 냉대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마침내 그는 스스로 '위대한 작업'이라고 불렀던 크레타 유적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채 쓸쓸하게 세상을 떴다.

"고고학은 모험과 낭만을 찾아 떠나는 결단력과 정신적인 만족을 위해 책과 씨름하는 성실성이 한데 어우러진 학문이다. "

우리 독자들은 수년 전 중국의 고고학 전문 논픽션작가 웨난(岳南)이 쓴 일련의 작품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진시황의 무덤》 《법문사의 불지사리》 같은 작품들이 유물 유적을 매개로 현재와 과거를 종횡으로 넘나드는 스케일과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매력 때문에 큰 관심을 모았다.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은 다소 속도감이 있는 웨난의 책과는 달리 느긋하게 산책하듯 읽을 수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미라,아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문명,마야와 아즈텍 등 중국을 뺀 주요 고대문명의 발굴을 다루고 있지만,이 책에서 유물과 유적의 설명을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연이다. 주연은 그것을 둘러싸고 명멸해간 사람들의 열정과 헌신,그들이 세상을 살아간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이 고고학 명저의 반열에 꼽히는 것도 바로 전문학술서적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W C 체람 역시 전문 고고학자가 아니고 독일 신문 디벨트의 저널리스트이자 출판인이다. 하지만 첫 작품인 이 책으로 큰 명성을 얻었고,이집트 정부의 아스완댐 건설로 수몰될 뻔한 아부심벨 유적을 건져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인간이 겸허한 마음을 배우고자 한다면 하늘을 우러를 필요가 없다. 우리보다 수천년이나 먼저 태어나 우리보다 먼저 자랐고,우리보다 먼저 간 문명세계로 눈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

고고학과 위대한 고고학자를 통해 그가 얻은 세상에 대한 통찰이다. 1949년 나온 독일어판 원제는 《여러 신과 무덤과 학자들-고고학 장편소설(Roman der Archalogie)》.국내에는 1984년 처음 소개됐고,이번에 새로 번역된 책은 2008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했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