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오늘로 19일째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가 경기 평택공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노조는 이 자리에서,"미국에서도 자동차기업을 국유화하고 있다. 정부가 즉각 공적자금을 투입해 쌍용차를 공기업화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국유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회사를 국가 소유로 바꿔,구조조정을 피해 보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국유화는,대주주 지분을 산업은행으로 넘기는 것을 말합니다. 산은을 정부가 소유하고 있으니까,쌍용차가 자연스레 공기업 비슷한 위치로 바뀐다는 것이지요.(한국전력과 같은 진짜 공기업과는 다른 의미입니다만.)

여기서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선 쌍용차 직원들로 구성된 노조가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하는 게 윤리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노조는 쌍용차 경영실패의 한 당사자입니다. 다른 축인 경영진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했지요. 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 역시 경영권에서 완전히 손을 뗐습니다.(추후 지분이 무의미한 수준까지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노조는 회사가 위기에 놓였으니,국민 세금을 투입하고 구조조정을 중단하라고 합니다. 파산위기의 책임을 국민과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에 다름 아닙니다.

두 번째는 공적자금 투입의 전제조건이,통상 '강력한 구조조정'이란 점을 노조가 외면하고 있다는 겁니다.

과거 국내 기업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대주주 지분을 산은에 넘기는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모두 인력 구조조정을 거쳤습니다.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기업 회생을 위한 자구책을 요구한 결과이지요. 노조 희망대로 구조조정 없는 공적자금 투입은 사실상 어려운 얘기입니다.

노조의 이런 주장에 대해,산업은행에 물어봤습니다. 산은은 "국유화는 그야말로 노조 생각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대학원장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김 교수는 제게 "노조가 국유화 주장을 한 게 진짜 맞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국민 혈세를 쓰기 위해선 공익적 목적과 함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얘기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쌍용차 사태는 단기간 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사자인 노사간 이견이 워낙 큰데다,정부 역시 당분간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노조는 최근까지 임금삭감과 함께 미지급 인건비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187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자구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임금삭감이 필요할 땐 강력 반발했고,구조조정이 필요할 때에야 임금삭감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때늦었지요.

파산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미지급 임금을 담보로 2000억원 가까운 돈을 빌려줄 은행도 없겠지요.

사측 역시 구조조정 없이는 파산이 불가피하다는 주장 외에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법원 및 채권단의 입장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겁니다. 법정관리 중이니까요.

사실 쌍용차는 구조조정을 거친다 해도 지금 상태로 독자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제품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신차 개발능력도 부족해 보입니다.

제3자에 매각돼야 살 수 있는데,부채 많은 이 회사를 매입한 뒤 매년 수 천억원씩 추가 투자할 곳이 있을 지 의문입니다. 만약 구조조정조차 거치지 않는다면,전세계 완성차 중 생산성이 최저인 기업,노조가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옥쇄 파업을 벌이는 기업을 인수할 곳이 나타날 지 궁금합니다.

더욱 큰 문제는 쌍용차 사태를 놓고,왈가왈부하는 외부인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겁니다. 평택시장을 비롯해 여야 정치인과 시민단체,종교단체 소속 외부인들이 제집 드나들듯이 평택공장에 몰려들고 있습니다.

쌍용차 파업사태가 지속되면,파산은 불문가지입니다. 현업 복귀를 기다리던 4600여 명과 수 만명의 협력업체 직원들이 직장을 잃게 될 겁니다. 파업 중인 1000여 명 역시 회사 회생 후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집니다.

수많은 과거 사례처럼,이 과정에서 책임지는 사람은 또다시 나타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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