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빌리면 4만달러 손해야.좀 더 싼 배를 찾아 봐!"

4일 새벽 1시.환하게 불이 밝혀진 서울 남대문로5가 STX남산타워 19층 사무실에는 STX팬오션 대형선 영업1팀 직원 12명 전원이 남아 긴박하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들여오는 석탄 25만t을 나를 수 있는 선박 4척을 빌려야 했기 때문이다. 화주는 남동발전.전 세계 40여개 해운사 선주와 20여명의 브로커들을 수소문한 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척당 2만2000달러에 배를 빌려주겠다는 유럽 선사를 찾아냈다.

4척의 배를 빌리는 작업이 끝난 시간은 새벽 3시.박강희 영업1팀장은 "한두 달 전만 해도 5~6명이 남아 야근을 했으나 해운 시황이 살아나면서 12명의 팀원 모두 야근 체제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영업팀 야근 돌입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특수를 업고 해운시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해운업계는 해운 시황 반전의 지표로 △해운사 영업팀의 야근 돌입 △BDI 상승 △중고선 값 상승 △해운사의 용선 규모 확대 등을 꼽고 있다.

특히 야근은 업계가 피부로 느끼는 경기 호전의 신호탄이다. 영업팀 야근은 STX팬오션뿐만 아니라 현대상선,조강해운 등 벌크선 영업이 많은 해운사들로 확산되고 있다. 현대상선도 최근 10여명에 이르는 벌크선 영업팀 대부분이 뉴욕 시장이 끝나는 새벽 2~3시까지 사무실 불을 밝히고 있다. 조강해운도 10여명의 영업팀이 배를 잡기 위해 야근에 돌입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최근 들어 화주들의 주문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배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중국 일본 인도 유럽 등의 배를 잡지 못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 뉴욕의 용선시장까지 전화를 걸어야 해 새벽 2~3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BDI 급상승

해운 시황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수인 BDI는 4일 1주일 새 1000포인트 이상 상승하면서 4291포인트를 기록했다. 중국의 곡물과 철광석 수입량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벌크선 수가 예상보다 많이 늘지 않은 것도 BDI 상승의 한 요인이다. 조선 · 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5월 말까지 벌크선 해체량은 총 152척.작년 한 해 동안 총 93척이 해체된 것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늘어났다.

올 들어 전 세계에서 발주가 취소된 선박 492척 중 325척이 벌크선일 정도로 벌크선 시황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신규 선박 투입이 제한된 가운데 중국발 물동량이 늘어나고 있고,유가 상승으로 연료탄 운송 수요도 커질 것으로 보여 BDI 상승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고선 값 오르고,용선 규모도 늘어

배를 확보하려는 해운사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중고선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다. 클락슨에 따르면 케이프사이즈급(보통 17만t급) 중고 벌크선 평균 가격은 올해 초 4400만달러에서 이달 초 5200만달러로 1000만달러 가까이 올랐다.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해운 시황이 좋지 않아 중고선 가격이 많이 떨어졌으나,최근 배를 확보하려는 해운사들이 많아져 다시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운사들은 작년 9월부터 줄였던 용선 규모도 다시 늘리고 있다. STX팬오션은 지난해 말 250척이었던 용선 규모를 290척으로 늘렸다. 정갑선 STX팬오션 전무는 "최근 사흘 동안 배를 10척이나 확보했다"며 "채산성이 맞는 배를 확보하기 위한 해운사 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제/장창민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