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의 재계 순위(자산 기준)는 10위다. 하지만 기업 인수 · 합병(M&A) 실력만 놓고 보면 '재계 1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식음료 업체에서 중공업 그룹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M&A 노하우를 쌓은 덕이다.

두산그룹은 3일 발표한 구조조정계획을 통해 이런 역량을 또 한번 발휘했다. 두산DST 한국우주항공(KAI) 삼화왕관 SRS코리아 등 4개 비주력 계열사 및 사업부문을 팔면서도 경영권은 유지하는 절묘한 절충점을 찾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역시!"라는 평가가 나왔다.


◆독특한 구조조정,딜레마 극복 묘안

두산이 이날 내민 카드는 독특하고 복잡하다. 기본 얼개는 두산그룹이 방산업체인 두산DST와 KAI,버거킹과 KFC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SRS코리아,병뚜껑을 만드는 삼화왕관 등 4개 비주력 계열사를 특수목적회사(SPC)에 매각하는 형태다. 특이한 점은 두 개의 SPC를 만들고 이 중 한 곳은 두산이 직접 설립한다는 것.

이렇게 만들어진 두 곳의 SPC는 각각 두산DST 등 4개 계열사의 지분을 나눠 갖는다. 두산이 설립한 DIP홀딩스가 51%,재무적 투자자의 오딘 홀딩스는 나머지 49%를 보유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두산이 20.54%의 지분을 갖고 있는 KAI의 경우엔 DIP가 51%에 해당하는 10.48%를 갖고 오딘은 나머지를 확보하게 된다. 두산이 이번에 매각 대상에 올린 나머지 회사의 지분(두산DST 100%,SRS 100%,삼화왕관 51%)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배분된다. 4개의 계열사가 각각 두 개의 SPC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조인트 벤처'로 탈바꿈된다.

두산은 4개 계열사 매각 대금으로 7800억원을 끌어들였다. ㈜두산이 2800억원의 돈을 대긴 했지만 이 중 1500억원은 ㈜두산이 보유하고 있던 삼화왕관과 SRS의 지분 매각대금으로 되돌려 받기 때문에 실제로 추가 투입된 돈은 1300억원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1300억원을 들여 7800억원을 획득,6500억원의 자금을 신규 수혈하는 셈이다.

매각을 하긴 했지만 경영권을 완전히 놓치지도 않았다. ㈜두산이 주도한 SPC가 51%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다 이들 계열사를 공개 매각할 때도 우선매수권을 갖기로 재무적 투자자와 합의했다. 나중에 시장이 좋아지면 더 비싼 가격에 계열사를 다른 기업에 넘겨 추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SPC 는 최대 5년까지 유지된다. 하석원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두산의 이번 구조조정안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방식"이라며 "기업과 재무적 투자자가 모두 윈윈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밥캣 굴레 벗어나나

두산은 이번 구조조정 방안으로 마련한 자금을 모두 밥캣의 유상증자 대금으로 활용,차입금 규모를 대폭 줄일 계획이다. 미국 건설경기가 꺾이면서 밥캣의 수익성이 대출을 해 준 금융회사들과 약속한 수준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밥캣 인수 당시 금융회사들에 보장한 조건은 차입금 규모(29억달러)가 밥캣의 EBITDA(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용 차감 전 이익)보다 7배 이상 많아지지 않도록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밥캣의 수익성이 더 떨어지면 추가 자금 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두산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이상하 두산인프라코어 전무는 "이번에 6000억원 이상의 유동성을 마련한 데다 최근 밥캣 채권단과 차입금 대비 EBITDA 비율을 더 강화하지 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이제 유동성이 모자라 그룹 전체가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기종 대우증권 연구원은 "밥캣에 대한 유동성 문제는 최소한 2년 정도 유예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안재석/장창민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