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엔 연중이 인사철이다. 새로 사장으로 영입된 얼굴들이 연일 신문 지상을 장식한다. 사장이 바뀌면 그 아래는 더 큰 파도가 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다. 최고경영자를 대신해 인사 결과를 최종 통보하는 인사 담당자의 마음은 어떨까. 인사통(通)으로 유명한 원로들을 지난 일주일 사이 세 명이나 만날 기회가 있었다. 칼에 피를 묻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 말을 아끼는 공통점이 있었다. 대화는 선문답처럼 흘렀다.

"인사 부문에서만 수십년 일했는데,결국 인사는 무엇인가요?" "순망치한(脣亡齒寒)."

"관운이 좋은 사람,나쁜 사람 구분이 있던가요?" "새옹지마(塞翁之馬)."

"경력관리를 위해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낫습니까? 아니면 여러 부서를 다 맡는 게 좋은가요?" "다다익선(多多益善)."

"인사가 만사라 했는데 결국 80 대 20 이론이 맞아요. 20%의 사람들이 놀고먹는 80% 때문에 고생하는 것 아닌가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길게 물어도,짧게 물어도 대답은 겨우 한마디씩.인사가 행복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해석은 필자의 몫이었다.

그들이 활동한 때는 경기가 어려우면 사람을 내치는 것이 인사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핵심 인력을 골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사람들을 내보냈다. 결국 입술이 없어지니 이가 시린 법.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진정한 인사라는 걸 나중에 느끼게 됐단다.

인사통 원로들은 관운에 관해서 별로 믿지 않았다. 빨리 올라갈수록 산이나 집으로 먼저 가고,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사람이 오래 남는 걸 목격했다. 그들은 힘들다고 불평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비즈니스는 전쟁,승률을 높이려면 무조건 병사를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고.

또 혼자 일을 다 한다는 데 오히려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놀고 있다고 보이는 그 80%는 더 괴롭다는 얘기.전쟁에 나가는 것이 로마 귀족의 특권이었듯,일하는 20%도 '가진 자의 의무'를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들에게 인사 담당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일을 물었다. 역시 '자르는' 것이었다. 정리해고 명단을 통보한 뒤 '화형식'을 당할 땐 마음도 타들어갔다고 했다. 그들은 그러나 앞으로를 더 걱정했다. "그래도 10여년 전만 해도 일단 들어가면 큰 걱정 없는 게 직장이었다. 이제는 나갈 때 앞뒤 순서가 없다. 예전이 그래도 좋은 시절이었다. "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