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 진보진영의 학자들이 이념적 성향에서 벗어나 팩트(사실)와 경제원리만으로 토론을 하고 그에 따라 통일된 입장을 내놓는 일이 가능할까.

최근 출범한 한국금융연구센터는 그런 일을 하겠다고 조직한 단체다. 진보진영의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과 보수진영의 윤창현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서울시립대 교수)이 동시에 들어와 있을 정도로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데도 각종 경제 현안에 대해 단일 입장을 만들어 발표하겠다고 한다.

센터 소장을 맡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치의 가중치가 학자마다 다를 수 있지만 팩트와 경제원리에 합의하면 상당히 많은 부분에 대해 유사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도그마는 진보에도,보수에도 모두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것을 한 꺼풀 벗기고 가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전 소장은 "특정 스펙트럼에 치우치지 않고 불편부당성과 사실관계,경제원리 등을 기초로 이론적으로 타당한 연구를 하면 충분히 의미있는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경제부처 통폐합에 대해 김 소장과 윤 사무총장이 똑같은 논리로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었다면서 이념적 동기가 개입되지 않은 경제학자들의 순수한 접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금융연구센터가 주로 연구하려는 분야는 '금융제도'와 '금융규제' 분야다. 경제학자들은 속보성 있는 통계에 약할 수밖에 없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시간을 두고 금융의 기본적인 부분들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청산결제,예탁결제,신용보증,신용평가 등 금융인프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볼 생각이고 금산분리 등 금융규제와 감독제도에 대해서도 논의할 계획이다. 전 소장은 "금융지주사법 논란에서 보듯 첨예한 이슈에 대한 심층적 분석은 결여되고 때로는 동기에 치우쳤다는 의심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센터는 연구기관으로는 드물게 '포지션 페이퍼'도 낼 계획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연구센터의 이름을 걸고 분명한 찬반입장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말꼬리 잡는 싸움이 판을 치고,이해관계 때문에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는 사안이 있을 경우 그런 노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금융연구센터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제자들이 만들었던 금융연구회에서 출발했다. 이 때문에 진보진영의 연구단체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전 소장은 "시작은 금융연구회였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같이 하고 있고 참여학자들의 스펙트럼도 좌에서 우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이념적 치우침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